너무너무너무너무 힘들었던 지난 두 달.
나는 담당 업무가 바뀌었다. '능력을 높이 사서 그랬다'면 회사(부서?) 측에서야 참으로 좋은 핑계일 테고, 아무튼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겨우겨우 목숨을 이어 가면서 일을 일 비슷하게 만들었다. 모든 게 생소했고, 그 생소함이 가시기도 전에 대만과 미국을 오갔다. 수 년 뒤, 지금의 일은 또 하나의 무용담이 되겠지.

그 동안에 아내는 정말 힘든 수술을 했다. 자궁과 난소, 장막(腸幕)에 들러붙은 큰 혹을 두 개 잘라냈다. 내 간병은 정말 그저 그런 편이었다. 내 일도 힘들고 아내의 수술도 힘들던 어느 날, 둘이 껴안고 조용히 한 번 울었다.

지금은 아내의 수술 상처도 아물어 가고, 나는 겨우겨우 사람 비슷한 꼴을 하게 됐다. 하지만 어쨌든 아직도 일은 산더미고, 그냥 오기로 일찍 퇴근해야만 겨우 퇴근 비슷한 걸 할 수 있는 상태다. 아내는 수술의 후유증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기도 전에 회사 일이 엄청나게 바빠져 버렸다. 오랫동안 그야말로 '전혀' 관리하지 않았던 차의 수리비는 50만원이나 나와 버렸다. "에잇, 잘 돌아 가는 게 없어." 하는 말이 저절로 입에서 튀어 나왔다.

출퇴근할 때 틀어 놓던 EBS 라디오는 KBS1로 바꿨다. 클래식 음악에 조예는 없어도 마음은 편해진다. 밤중 회사에서는 유튜브에서 엘튼 존이나 스티비 원더를 묶음으로 재생해 놓고 그 소리를 배경으로 일한다. 어떻게든 마음을 편히 하고 일에 몰입하기 위한 자연스런 고육지책이다. 고등학생 때라면 아마도 헤비메탈을 틀어 놨겠지. 잠시 일을 멈출 때마다 열심히 어깨 운동을 해서 근육을 풀어 본다. 농담이 줄었다는 생각을 자꾸 하면서 조금이라도 입을 열려고 해 본다.

착하기만 한 아내가 스트레스 관리를 잘 못 할까봐 걱정이다. 까딱하면 우울해질 수 있는 상황 아닌가. 몸은 아파서 수술했지, 일은 너무 힘겹게 바쁘지, 남편이라고 있는 녀석은 여름 유가도 내팽개치고 일에 파묻혀 있지... 내 마음이 안 좋아서 좀 안마라도 해 주려 하면 '나보다 더 힘들잖아' 하면서 자꾸 마다하고. 아니야, 사실 내가 덜 힘들 거야...

암튼, 이렇게 지난 두 달 동안 '바닥을 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중기적(?)으로는 위로 올라갈 일만 남은 거다. 아내가 그만 우울에 빠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샤워하고 있는 저 사람 등을 밀어주러 가야겠다.

CozyrooM.
by CozyrooM | 2009/10/28 22:01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3)
관심, 대화, 타협을 이끌어 내는 최후의 방법 - 폭력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들을 마구 헤집으며 달려도 심한 욕을 먹지 않는 방법은 '비상깜박이'이다. 아주 급한 사정이 있어서 그러나보다, 하고 이해해 준다.

젊은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아도 이해를 받는 방법은 '매우 아파하기'이다. 눈에 띄게 아파서 괴로와하는 사람을 어디에든 앉히지 않을 사람은 잘 없다.

지하도 바닥에 앉아 있어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남루한 옷차림'이다. 주머니에 동전이 몇 개 있을 때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에게 그 중 하나를 주고 싶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으면서 남루한 옷차림도 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협박'이다. 조직폭력배나 사기범이 종종 이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좀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나라가 망해 갈 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핵 개발 추진'이다. 가만 놔 두면 누가 죽어도 죽게 생겼기 때문에 주변에서 얼르다가 달래다가 한다.


누군가가 나를 억울하게 해고하려 하고, 나는 달리 일할 곳이 없을 때, 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일차적으로는 내가 (남보다 앞서) 해고되어야 하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따져 보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해고로 인해 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게 될른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 고용 유지는 커녕 아무도 내 억울함을 알아 주지도 않고, 제대로 따져 주지도 않고, 내가 얼마나 힘들지 이해해 주지도 않는다면?

'폭력'이 떠오른다. 폭력은 당위가 아니라 일종의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여기서 '자연스럽다'고 말한 것은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국가도 사회도, 자신의 회사도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을 때, 그 소외된 사람의 선택은 자멸 아니면 자기보호일 것이고, 그 자기보호의 몇 가지 방법(맨 앞에서 소개했던)들이 먹히지 않을 때 최후로 남는 것은 폭력 아닐까. 물론 다른 모든 방법을 다 써 봤느냐는 질문에 나는 답할 수가 없다. 당사자들이 아니니까. 어쨌든, 궁지에 몰렸을 때 최후의 수단은 폭력이 맞다는 것이다. 폭력이 뭐 별 게 아니다. 깡패들이 하는 짓만이 폭력이 아니라는 얘기다. 내 생존의 최소한의 경계에 누군가가 침입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부터가 피치 못할 폭력이다.

그 폭력이 권력이나 재력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좀 원시적이거나 좀 잔인해 보인다. 칼로 10명을 찔러 죽이는 것이 폭격으로 100명을 죽이는 것 또는 금융사기로 1억 명의 삶의 수준을 10%씩 떨어뜨리는 것보다 왠지 더 잔인해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사실, 권력의 실체도 아닌 그 대행자 - 젊은 의경(전경?) - 에게 쇳덩이를 던지는 것은 잔인해 보이는 것을 넘어 정말로 잔인하다. 경찰의 진압이 잔인한 것이야 말해 무엇하리. 아내는 뉴스를 보고 정말 심한 충격을 받았다. (임신부나 심약자는 보지 말라는 경고가 있어야 했다.) 가해자들은 숨어있고 희생자들만 나뒹굴던, 2009년 8월의 슬픈 쌍용자동차 공장.

그러더니 오늘 아침에 마침내 상투어구같은 '극적 타결'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노사가 서로 양보해서 해결했다는.

양보라는 것은 관심이나 배려, 또는 이타로서 이기를 얻겠다는 의도(잔머리?)의 결과물이다. 이 관심과 배려, 혹은 잔머리가, 사람과 사람이 서로 극언을 하고 때리고 피를 내고 울고 죽어야만 가능했던 것일까? 그럴 리가 있나. 하지만 지독한 폭력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양보가 없었다. 그럼, 결국 우리는 '관심과 배려, 지적인 타협을 이끌어내는 하나의 방법으로서의 폭력'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하나의 방법(비록 최선은 아니며 최후, 최악의 수단일지언정)으로 폭력이 분명히 기능한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이 폭력은 모든 천사들이 사라졌을 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완전한 절망 직전에 기댈 수밖에 없는, 기대어야만 하는 악마가 아닐까?

이런 논리가 힘을... 얻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선례가 반복되면 어쩔 수 없어진다. 이 슬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논리가 힘을 잃을 방법은 오직 하나, 이 폭력이라는 악마가 등장하기 전에 몇몇 유약한 천사들에게 기대는 것 뿐이다. 유치원에서, 부모에게서 배운 대로. (그런 유치원이나 부모들이 사라져가는 느낌이어서 또한 끔찍하지만.)

CozyrooM.
by CozyrooM | 2009/08/07 09:54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2)
허X영 아즈씨. 뉴스 읽기도 전에 푸흡.
마이클 잭슨 영혼, 사망전 찾아왔었다 [서울경제신문]



우와, 그래?

... 사망 전에 찾아 왔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시면, 사망 전에 말씀을 하시지. 그러면 인정.

근데, 저 아이큐 400이라고 주장하시는 아저씨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갖기는 갖는 거야?
아니면 그냥 굉장히 재밌어서 기사로 다루는 거야? 아니면... 돈 주고 실어 달라고 하나?
난 이게 정말 궁금해. 저 아저씨를 막 분석하고 싶... 아으 시간이 아까워서 못 하겠지만.


'티파니 허벅지 매력 1위'를 쳐다보고 있는 당신은 반칙.
.... '미스 재팬...'도 반칙!
CozyrooM.
by CozyrooM | 2009/07/30 09:25 | 보여주고 말하기 | 트랙백 | 덧글(1)
내 촛불을 따로 보관하기로 했다.

내게 있어 블로그에 붙어 있던 촛불은 일종의 '비망(非忘)의 증거'였다. 나는 역사 속에서 (그리고 내 시야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잊지 않거나 설령 잊더라도 최대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선언, 그리고 지금의 모든 현실은 내가 (혹은 당신이) 내린 어리석거나 혹은 현명한 선택들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즉, 특별히 반(反) 이명박, 반 한나라당, 반 싸가지없는 졸부들, 반 뭐뭐라든가 하는 의미라기보다는 (물론 아예 포함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지만 -_-) 나름 보수 선언(여기서의 제대로 된 보수의 느낌이 뭔지는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글을 읽고 짐작하소서)의 스티커라는 말이다.

이 나라는 분명히 아직도 (평균적인 의미에서는) 천민자본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흥 개발도상국이고, 따라서 우리가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기 전까지 비교적 잘 간수해 오던 보수적 가치 - 지조, 청렴, 혜민(惠民), 상부상조 - 는 난데 없는 '돈이면 다 돼' 주의에 밀려 시름시름하고 있는 상태다. (100% 절멸한 것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제대로 된 보수적 가치를 지키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억울(?)하게 난데없는 '좌파', 또는 좌파적 성향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산다. 좀 새로운 개념인 '평등' 하나 때문이지, 아마?

그래서, 지금의 왜곡된, 어두운 세상을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수적 시각으로) 보려는 노력만큼은 계속 하겠다는 생각으로 블로그에 촛불을 하나 꽂아 놓은 것이다. 그것을 이제 거두어서 서랍 속에 넣는다. 이유는 거의 하나다. 얼굴 팔려서다. 말로는 이러니 저러니 많아도, 과연 나는 내 형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는가? 지금의 내 모습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모습인가? 이런 질문에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나는 이른바 '행동하는 지성'이 아니다.

다만 마음만 미지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마음만. 그냥 생각 없는 소시민의 모습으로.

그래서, 스스로 부끄러워서  블로그의 최전방에 더 이상 촛불을 놓을 수가 없다. 그냥 이 글을 서랍 삼아 보관할 뿐이다.



물러나고, 물러나고, 물러나고... 이게 최소한이라는 생각이 든다.
CozyrooM.
by CozyrooM | 2009/07/20 16:11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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