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야기의 시작
이 이야기는, 바쁜 업무 중에도 자신이 생일선물로 받은 어느 책에 씌어 있는 '알프레드 디 수자'라는 이름 자체가 참으로 괴이하다고 느낀 모 반도체 회사의 김 대리의 묘한 표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잖아도 그는 평소에 류시화씨의 글이 좀 구닥다리같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70년대 한국의 과장된 낭만, 80년대 '홀로서기' 류의, '시(詩)라고 하기엔 너무 설명적인 아포리즘'의 냄새가 느껴진다는 겁니다. 하지만 김 대리는 자기 자신의 취향이 그다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그런 생각을 쓸데없이 떠벌이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신경을 써 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책에 대체 어디서 언제 뭘 하던 사람인지 알 길이 없는 '알프레드 디 수자'라는 이름이 있고, 그 사람이 했다는 다음의 말이 스스로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류시화씨에 대한 괜한 거리낌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습니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자 -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것처럼 / 류시화 엮음 - 오래된미래>> 참 좋은 구절이어서 남들에게 소개해 주기도 했긴 했지만, 김 대리의 마음에서는 이 글 자체가 왠지 너무 달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충분히 쌉쌀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달콤함이 같이 있어서, 글의 진정성이 독자에게 사무치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어쨌거나, 김 대리는 '알프레드 디 수자'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궁금했습니다. 검색을 해 보니 한글로 된 웹페이지에는 대부분 로마자 이름이 없었는데, 잘 찾아 보니 Alfred D. Souza 또는 Alfred D'Souza가 원래 표기였습니다. 간혹 '알프레드 디 수잔'이나, 'Alfred D. Suja'처럼 희한하게 인용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김 대리는 '공자, 맹자, 주자, 수자'는 일단 아니라는 점에 안도했습니다. 2. 대체 뭐야? 도저히 한글 웹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겠다고 생각한 김 대리는 영문 웹으로 검색을 넓혀 갔습니다만, 여전히 분명한 기록은 없었습니다. 어떤 곳에는 '프란치스코 수도사'로 되어 있고, 어디에는 '신부'로 되어 있었고, 그나마 어디서 언제 뭘 하며 살았는지에 대한 얘기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네이버 지식인 비슷한 'Google Answer'에도 그에 대한 궁금증은 있을지언정 속시원한 답은 없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글을 쓰지 않는 곳에서는 '알프레드 디 수자'의 유명한 인용문이 위의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의 글로서 유명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For a long time it had seemed to me that life was about to begin. But there was always some obstacle in the way, something to be gotten through first, some unfinished business, time still to be served, a debt to be paid. Then life would begin. At last it dawned on me that these obstacles were my life." "오랫동안 나에게 있어 삶이란 이제 막 시작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늘 무엇인가 방해물이 있었으며, 그 전에 뭔가를 꼭 거쳐야만 했으며, 뭔가 일을 끝내 놓아야 했으며, 시간을 어느 정도 보내야만 했으며, 빚을 갚아야만 했다. 그 다음에서야 삶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마침내 나는 깨달았다. 이러한 방해물들 자체가 나의 삶이라는 것을." (CozyrooM 옮김) 커허, 좋구나. 하지만 김 대리의 눈에 이 글은, 왠지 수도사의 글이라기보다는 사색을 좋아하는 사업가의 글처럼 보였습니다. 어쨌거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글귀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김 대리는 점심시간을 그 추적에 모두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인용구들을 찾아냈습니다. "Dance like nobody's watching;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Sing like nobody's listening; live like it's heaven on earth." -- Mark Twain "Work like you don't need the money,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and dance like no one is watching." --Satchel Paige 류시화의 오류 (... 중략) 이것은 류시화의 오류로 판단된다. 이 글은, 특히, <<내이름은 김삼순>> 이라는 드라마에서 언급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므로, 더 더욱 그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편집되지 않은 상태의 이글의 원작자는, Susanna Clark and Richard Leigh 이며, Kathy Matta 에 의해 불리어진 곡의 가사에 삽입되어 있다. When I was a young girl, my daddy told me A lesson he learned, it was a long time ago If you want to have someone to hold onto Youre gonna have to learn to let go You have to sing like you don't need the money Love like you'll never get hurt You gotta dance like nobodys watching It's got to come from the heart if you want it to work Now here is the one thing I keep forgetting When everything is falling apart In life theres enough no I need to remember Theres such a thing as trying too hard You have to sing like you don't need the money Love like you'll never get hurt You gotta dance, dance, dance like nobodys watching It's got to come from the heart if you want it to work You have to sing sometimes like you don't need the money Love sometimes like you'll never get hurt You gotta dance, dance, dance like nobodys watching It's got to come from the heart if you want it to work 한편, John Gray 는 자신의 글에서, Susanna Clark and Richard Leigh 의 시에서 일부를 따오고 일부를 수정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Work like you don't need money.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And dance like no one's watching. 결론적으로, 류시화에 의해 Alfred D'Souza 의 시로 잘못 소개되고 편집되어 소개된 글은, John Gray 의 수정된 글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후략) 그 이후에 이런 글도 발견되었습니다. (인용처 생략) That lyric comes from a song by long-forgotten English indie band The Longpigs. It was rather fantastically titled "The Frank Sonata". The chorus went: Love like you've never been burnt Work like you don't need the money Dance like there's nobody watching Kiss like your tongue is on fire Suck like you don't need the money Sin like there's nobody judging 이런 세상에. 대체 뭐랍니까. 김 대리의 머리에 땀이 흘렀습니다. 3. 인용하라, 차라리 모르면 모르는 대로 어쨌든 알프레드 디 수자(발음은 '디 수자'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의 글로 TV와 활자를 타고 널리, 아주 널리 알려진 이 글은... 아직도 제게는 '작자 미상'입니다. 이 일련의 허무함은 제가 며칠 전에 썼던 다음 글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합니다. (클릭)우츄프라카치아와, 여인의 젖을 빠는 노인 이야기 저는 사실 논문 스타일이 아닌 글쓰기에 있어 '인용'의 기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용은 그 말을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아우라에 기대어 자신의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는 기법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주장을 표현하기 위해 특정한 인용구 이상의 최상의 표현이 달리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어쨌든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제 취향입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잘 모르는 복잡한 이름을 갖는 저자의 글을 따 와서 인용을 하려면 그 인용구를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정황에 그 글을 썼는지, 왜 그 글을 썼는지 정도는 확실하게 알고 이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류시화씨는 인용을 정확하게 하지 못한 것 같고, 인생의 순간 순간을 깊이 들여다보는 Alfred D'Souza의 시각을 지나치게 70년대 한국식으로 달콤하고 순진하게 재해석한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검색을 하다 보니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뭐가 맞건 어때, 마음을 움직이면 그만이잖아...'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당신이 어떤 말에 의해 감동을 받았는데, 그 말이 원작으로부터 옮기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적당히 수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작자의 말인 것처럼 인용된다면, 그것은 누군가에게 좀 억울한 일이며, 진실을 교묘히 왜곡하는 일이며, 쉽게 말해 참 뻘쭘한 일입니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을 하든,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을 것처럼 사랑을 하든 말입니다. CozyrooM.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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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그냥 니가 믿는 되도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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