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봉준호 감독의 괴물 찾기, 괴물 잡기 - 노 스포일러 감상.
영화 내용을 가급적 거의 언급하지 않고 쓰려고 하니 쉽지는 않습니다만... 어쨌든 어제 부서 사람들이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충동적으로 달려가 보았던 김에, 그 감상을 조용히 써 둡니다.







봉준호 감독은 전형적인 386세대입니다. '너희들은 모르는 87년의 상황'을 그 한가운데서 젊은 몸으로 겪은 사람이죠. 역시 그 상황을 온 몸으로 겪었다기보다는 어린 학생으로서 구경했던 저로서도, 그걸 겪은 사람과 그걸 겪지 않은 사람은 머리 속의 구조 자체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지속된 부정한 권력의 폭압과, 오랜 시간 지속된 억눌린 대중의 분노가 가장 극한적으로 대립했던, 물기를 최대한 머금어 곧 소나기를 뿌릴 먹구름 같았던 시간. 또한 반대로, 한 세기를 지배했던 '사상의 시절'이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마음보다 물질이 설득력을 갖기 시작하게 된 순간, 물질이 마음의 정당함을 증거하기 시작하게 된 순간. 비굴한 자가 안위를 얻고 뜻 있는 자가 칼날에 잘려나가던 혼돈의 순간.

386 세대는 그 끔찍한 순간(더 끔찍한 시절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 없습니다. 상대적 체감이라는 것으로 이런 문제를 다루기도 싫습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있어 그 시절은 정말 끔찍한 순간들이었을 뿐!)을, 선대보다 비교적 잘 자란 연약한 육체 안에 '마음'으로서 고형화했습니다. 그들이 가슴 안에 갖고 있는 흉터는, 인생이 고생 뿐이었던 전쟁 전 세대들이 무조건 나무랄 수도, 진정한 궁핍과는 거리가 먼 90년대 이후의 세대들이 무조건 고리타분하게 볼 수도 없는 어정쩡하게 '괴상'한 모습입니다. 또 슬픈 모습입니다.

<괴물>은 이런 봉준호 감독이 품고 있는 마음 속의 괴물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보다 다양한 각도로 확장시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괴물'은 영화에서는 오염된 한강물에서 태어난(뛰어난 생존력을 가진) 돌연변이 생물체이겠지만, 사실은 비틀린 국가권력 또는 거대 자본일수도, 모든 조직화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비리일수도, 그 누구네 가족에서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슬픈 소사일수도, 개인과 개인 간의 엇갈린 의사소통일수도, 위선적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 안의 '오염'된 가치체계일수도, 미디어의 '하수도'가 되어 버린 3류 인생들의 순간 순간의 잘못된 판단들일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괴물> 안에 등장하는 괴물의 모습이 아주 흉한 이유도 그것이리라 했습니다. 괴물의 모습은 슬픔과 왜곡과 소외와 분노로 가득했습니다. 특히나 마지막 즈음에서 괴물은 측은할 정도의 순진하고도 슬픈 모습을 한 번 보여줍니다. (아직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관계로, 그것이 어느 장면인지는 적지 않겠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서글픈 이미지의 괴물을, 그의 독특한 인간미와 유머로 알맞게 채색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우습게, 어떤 부분에서는 슬프게, 전체적으로는 블랙이면서도 다양한 색상 변화가 있는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가 인상 깊게 보았을 여러 영화들의 여러 장면들도 자연스럽고 재치있게 인용해서 끼워넣고 있습니다. 앞서 보았던 <카>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영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보실 경우 그 재미가 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깐느에서 영화인들에게 이 영화가 큰 사랑을 받은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놀랍도록 끈적한 인간적 연기로 인해 비록 헷갈리지만) 전적으로 SF인지라 어느 정도 등장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치상의 결함'은 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영화의 즐거움을 위해 어느 정도 눈감아줄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런게 아닌 몇 가지 서운함을 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나라 가족의 모습, 2%만 더: 영화 속의 가족은 헐리우드식 가족과 한국식 가족을 왔다갔다 합니다. 조금만 더 한국식으로 뭔가 좀 더 묻어 있는 가족이었으면 했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로 '징한 맛'을 조금 더 넣었으면 어떨까요.

2. 디지털 그래픽, 2%만 더: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웨타 워크샵에서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는 덕에 다른 업체에서 후반작업을 넘겨받은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이어받은 업체도 헐리우드의 유명 회사이지만), 디지털 그래픽 장면의 군데군데에서 아쉬웠습니다. 불안할 정도로 가까이 잡는 장면에서는 특히.

3. 옥의 티 조금만 더: 재미가 될수도 있고 흠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약간의 옥의 티가 있는데, 좋게 보면 좋게 보아 넘길만 합니다.

배우들의 연기 쪽에서는 만족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명장면이요? 글쎄요. 몇 가지가 있습니다만 저는 '식사 장면'을 참 뛰어난 부분으로 꼽고 싶습니다. (어떤 장면이냐구요? 직접 보시면 아십니다 ^_^;) 그 장면, 가슴이 아프도록 슬프고 또 재밌는 장면입니다.

어쨌든, <괴물>은 괴물 영화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헐리우드 진출 문제 때문일른지 약간 뭔가와 타협한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 영화는 아마도 봉준호 감독 개인이 평소에 충분한 자본과 신뢰가 있으면 꼭 해 봤으면 하고 바랐던, 그런 개인적인 영화인 것 같습니다. (뜻밖에도 이와 비슷한 출신의 영화로서 저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꼽겠습니다. 한 쪽이 호평을 받고 한 쪽이 악평을 받는 이유는, 역시나 연출력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무수한 군중들이 와아 하면서 볼 영화이기도 하고, 또 훗날 DVD를 틀어 놓고 몇몇이 모여 킥킥거리면서 그 국물을 우리고 또 우리면서 볼 영화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런 성격은 <카>와도 비슷합니다.)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아마도 그 마음 속에 담겨 있을 것들'을 깊이 신뢰하는 팬으로서, 다음 작품과 또 그 다음 작품으로 이어질 그의 행보에서 보다 다양하고 자유롭고 농축된 볼거리, 들을 거리, 생각할 거리들을 만나 보았으면 합니다. DVD가 나오고 한참 됐을 즈음에 스포일러 걱정 없이 영화의 세부를 하나 하나 들춰 가며 다시 한 번 감상을 적었으면 싶네요.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마음 속 괴물은 아직 죽지 않고 팔팔 뛰어 돌아다녔으면 합니다. :)
CozyrooM.



(곁다리: 회사 주변에서 급히 찾은 영통 키넥스 영화관은 전체적으로는 '영 아니었'습니다. 수원 메가박스는 그럭저럭이었습니다만... 이래서 저는 서울을 아직 못 떠납니다.)
by CozyrooM | 2006/07/29 15:03 | 3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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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ulse01 at 2006/07/29 16:32
진정 보고 싶습니다. 흑.
Commented by 길치 at 2006/07/31 20:54
..영통 키넥스!!! 깜짝 놀라버렸습니다;ㅁ; 영통 키넥스 사실 별로....권할만한 영화관은 아닙니다. 웬만해선 잘 안 가지요;;
Commented by 김종민 at 2007/11/10 10:41
ㄳ4 ㅅ45교교5ㄱ ㅛ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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