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두지 마...
나이가 서른, 마흔도 안 되어서 '스타일'이라는 것을 딱 정해 두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이건 이래야만 하고, 저건 저래야만 하고, 이것의 '지존'은 이것이고, 저것의 최악은 저것이고, 이런 건 정말 촌스러운 것이고, 저런 건 반드시 따라야겠고, 나는 이런 사람이기 때문이 이러저러하지 않으면 안 되고...

물론 보편적인 원칙의 문제(이런 거야 당연히 만고불변이겠죠)를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개인적 선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렇게 딱 정해져 있는 것에 대해서는 좋게 볼 부분도 많습니다. 일찍 '관(觀)'을 형성하고, 분별을 하는 연습을 하고, 일찍 선택한 것들을 계속 심화할 수도 있을 테고, 계속 자신이랑 다른 의견과의 충돌을 통해서 변증법적으로 성장할 수도 있을 테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당수의 경우 그 '스타일'이라는 것이 그다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기에 크게 걱정할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너무 어린 시절에 자신의 취향을 제한하는 것이 혹시 편협한 인격, 왜곡된 지식을 만들지나 않을까 하는 것,
인격이 잘 굳어지기도 전에 너무 많은 충돌을 겪어서 마음의 면역성이 떨어지거나 마음이 닫히지 않을까 하는 것,
너무 하나로 고집해 놨다가 나중에 되돌리지도 못 하고 자존심 하나만 덜렁 남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것,
훨씬 더 다양한 인생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하지 못 하고 사는 것도 인생의 낭비가 아닐까 하는 것

이렇게 몇 가지가 있네요. 뜬금 없는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북아프리카 사막의 새벽에 딱정벌레 한 마리가 밖에 나와 다리를 쩍 벌리고 꼼짝없이 서 있는 이유를, 벌레 잡아 먹는 새들이야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저 멍청한 뭔가가 멍청한 짓거리를 한다고 할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아침 이슬을 온몸에 맺히게 해서 하루 먹을 물을 마련한다는 사정을, 그 딱정벌레 옆에서 한나절 같이 있지 않고서야, 딱정벌레의 움직임을 편견 없이 지켜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어요.

그리고 이 딱정벌레의 지혜 같은 것들은 대체 '난 벌레라면 싫어, 보기도 싫어! 보여주는 놈과는 싸울 테다' 하는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기나 하겠어요.


그래서 제 후배들에게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 보고 듣고 겪기를, 계속 받아들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가 가장 빛나는 시간에 그 '경험'을 스스로 너무도 제한했기에(그리고 후회하기에) 더더욱 열심히 권하고 있지요. 그리고 저 스스로에게도 계속 경고를 보내고 있구요... (아파라! 제 의욕은 불과 몇 년 전에도 하늘 같았거늘 지금은 '현실감각'이라는 핑계로 스스로에게 울타리를 치고 있습니다.)

물론 남이야 어떻게 살건 무슨 상관으로 이렇게 토 다는 짓을 하느냐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경험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 자체가 편견일 수도 있겠습니다. 인생의 효율화, 좋은 것이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 '결론부터 간추려진 보고 자료'보다는 '생 데이터'를 더 좋아합니다. 아주 성실하게 모인 생 데이터의 힘, 인생 데이터의 힘.

특히나 저랑 닮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꼭 얘기해 줄 겁니다. '널 가두지 마, 넌 쓰레기의 느낌도 천사의 느낌도 다 알 수 있는 자격이 있어, 그리고 필요가 있어. 지금의 너는 아직 그 누구도 아니고 그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특별해. 섣부르게 자신의 문을 막아 둔 사람들의 미래를 너는 현재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갑갑할 때마다 드는 글귀 하나 '~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가 아니다.'
CozyrooM.
by CozyrooM | 2006/09/14 13:17 | 2 짧은 생각들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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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cro™ at 2006/09/14 13:25
코지방햄 오랜만.. 마이 바쁘세유??
요새 대리만족으로 여행기들만 많이 읽고 있어유(하긴 원래도 많이 읽었지만..)
사람없는 곳에서 좀 쉬고 싶어유..
Commented by MiR at 2006/09/16 01:39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 되자는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글 한줄 한줄이 무척 와닿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Commented by 정문철 at 2006/09/21 11:39
예전에 배낭여행을 갔을때니까 벌써 10 몇여년 전이네. 나보다 먼저 배낭여행을 갔던 사람들이 이른바 '전문가'라고 행세하면서 배낭여행 팁을 얘기해주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유럽에서 물을 사게 되면 절대로 탄산개스가 든 것을 사지 말라.였었지. 맛없어서 못 먹는다고. 그래서 그 말을 무슨 금과옥조인 양 신봉하면서 물을 살 때는 꼭 개스가 들지 않은 물을 골라서 먹고, 혹시라도 잘못 탄산개스가 든 물을 사면 바보짓했다고 절망하기도 했었슈.

..2,3년 전에 우연히 그 문제의 탄산수를 한 병 맛보게 되었는데, 이게 꽤 상큼한 맛이 있는거라. 콜라마시기도 뭣한 한밤중에 산뜻한 뭔가를 마시고 싶을때도 좋고, 밥먹을때 같이 먹어도 좋고.
그때는 왜 그렇게 새로운 것 시도하는것을 두려워했는지. 기껏 배낭여행까지 가서도 내가 알고있던 것들만을 보고, 알고있던 것들만을 먹고, 알고있던 것들만을 하고 돌아왔다는 생각을 한참이나 뒤늦게서야 했던거라. 그러고보니 참 세상에는 무심히 지나친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오랜만에 꼬지룸의 따사로운 글을 보고는 주절주절합니다. :) 잘 지내지?
Commented by CozyrooM at 2006/09/27 20:12
어헛. 정문철옹. @_@ 이 사람, 이 사람...
Commented by 정문철 at 2006/10/04 00:09
어허, 이 친구. 할 말을 잊었는가. 언제쯤이나 한 번 또 만나게 되려나.
추석 잘 쇠라구. 자주 놀러올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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