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피싱과의 투쟁 연대기 - 국민카드, 국민은행, 한전.
1. 두근두근

처음 사기 전화를 받은 것이 언제더라. 사무실이었는데, 내게 한 장밖에 없는 국민카드 결재로 롯데백화점에서 140만원이 넘는 금액이 결재되었는데 확인이 필요하다는 녹음메시지를 전화로 들었다. 문제는 그게 그다지 열렬히 사랑하지도 않는 출신학교 후원용 카드였고 내게는 십 원 한 장 떨어지지 않는 것이어서 그야말로 거들먹거리기 위한 용도 또는 기념 용도 외에는 꺼내 본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갖고 다니지도 않은 지 오래 된 카드였던 거다.

- 대체 그 카드로 어떻게 돈이 빠져나간 걸까.
- 어떤 죽일 넘이 내 카드의 번호 사용해서 카드를 위조한 걸까.
- 상당한 금액의 손실에 대해 내가 항변할 방법이 없는 걸까.
- 당장 정식 해지하지 않으면 피해가 커지겠구나.
- 기타등등 기타등등 덜덜덜

딱 30초도 안 되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너무 급한 일이 생겨서 "상담원 연결"을 하지 못한 채 일단은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급한 일을 서둘러 끝낸 뒤에 이 끔찍한 일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일단 인터넷 검색을 했다. 검색어가 '카드 결재... 음성안내... 확인...' 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여기서부터는 다들 짐작하시리라.

- 이런 개새끼들. 어우 이런 개새끼들.

나름 현명 지혜 네트워크 뭐 어쩌구 나불대면서 남 어설프게 가르치려 들던 내가, 정통으로 한 방 먹은 날이었다. 정통으로.



2. 부글부글

근본적으로는 사람을 믿고 보는 성격이어서 그런지(안 그런 사람이 있으랴만) 아주 싫어하는 게 '사기'인지라, '이 개새끼들'을 어떻게 잡아족쳐야 우주가 평화로울지 한참 고민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전화가 또 왔다. 음성안내 차근차근 잘 듣고, '상담원 연결' 번호를 눌렀다.

- 녜에, 궁민까드입니다아 (딱 듣기에도 38선 이남에서 10년 이상 살아 본 적이 없는 듯한 목소리다.)
- 야 이 빌어먹을 놈의 새끼들아. 뭐 하는 놈...
- 철커덕 (뚜우-)

뭐야 이거. 10분 넘게 쌍욕을 해 줘야 되는데 2초밖에 못 했어! 내가 못 거는 전화는 너무 싫어!

그 이후로도 내 사무실 전화로는 두 통이 더 왔다. 그 때마다 어떻게 하면 좀더 장시간 욕을 해 줄 수 있을까 궁리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얘들은 내가 어떤 심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제일 길게 퍼부은 게 5초 정도로,

- 저기요오, 이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이 욕을 먹으시지요? 이 개같은... (철커덕, 뚜우 - )

뭐, 법적으로는 채 욕이 시작되기 전에 끝났다. 아, 열 받아, 아아, 열 받아!
실제로 추적 자체가 어렵다는 경찰의 인터뷰를 방송에서 보고는 더 열 받았다. 경찰도 어떻게 못 한단 말이야? 아아!



3. 키득키득

역시 시간은 사람을 현명하게도 무디게도 만들어 준다. 경험이 반복되고 누적되면서 자극에도 강해지고, 동일한 시간 속에 할 수 있는 생각의 양과 판단의 정확도도 늘어난다. 난 이런 연유로 해서 나이 먹는 게 좋다. 어쨌든, 자아... 이 천하의 개자식들이 왜 아무래도 어색한 음성재생 소프트웨어 또는 ARS을 쓰는 걸까? 아무래도 비용 때문일 테고... 맞다 비용!

이 빌어처먹을 기생충놈의 새끼들에게 내가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는 이 자식들에게 '효과'보다는 '비용'을 많이 발생시켜 주는 것이고, 그것에 더불어 '기회비용'까지 발생시켜 준다면 금상첨화겠지. 이 넘들에게 내가 만들어 줄 수 있는 비용은 '통화료'와 '시간'뿐이니까, 그걸 노리자!

- 전화가 오면 무조건 '상담원 연결'까지 간다.
- 상담원이 오면 사용한 적이 없는 카드 비용이 발생했다고 최대한 불쌍하고 불안한 목소리로 '호소'한다.
- 이것저것 말해 달라고 하면 다 말해 준다. 단, 주민등록번호라든가 이름, 주소는 모두 허위로 말한다.
  아주 철저하게 해 보고 싶은 분은 어둠의 경로로 주민등록번호 제작을 한번 해 보심이 어떨... 까... 안 좋나? 암튼.
- 결정적인 시점이 됐을 때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이 등신아.'라고 해 주면 완성.

결의를 다지면서 참고 기다리니 실전의 때가 왔다. 뚜르르르륵! 전화 수신. 이 얼마만이냐!
어눌한 음성의 ARS가 이젠 정겹기까지 하다. '국/민 칻으입니다. 귀하의...' 아이고 됐다고. 상담원 연결이 9번이었지 아마, 미리 누른다 빌어먹을. 상담원 나와! 나와! 이 천하의 말종같은 개자식(에게 고용되어서 푼돈 받고 사기 대행해 주는 벼룩같은 넘)!

- 녜에, 국민카드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올, 발음 봐라, 많이 늘었다?)
- 아 예, 뭔가 카드 비용이 발생했다는 메시지가 와서요...
- 예, 그러시군요 (그렇긴 뭐가 그래 이 확). 그럼 제가 정보를 확인해서 실적을 확인... (용 쓴다)
- 이름은 이XX 이구요, 주민등록번호는 팔구공... (이름이고 뭐고 되는 대로 부르기)
- 예,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확인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전화 끊지 마시구요... (응응 *^^*)
   (잠시 침묵......이 부분 은근 웃기다. 제가 확인하긴 뭘 해?) 아 여기 실적이 나왔네요. 백 사십 팔만... 이거 사용하신 것 맞나요?

여기까지 듣고는 - 난 정말 내가 완전한 평정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 그만 장난기와 분노가 뒤섞여 버리고 말았다. 대답을 잘못 해 버린 거다.

- .
- 예? 이 금액 롯데백화점에서 사용하신 적이 있다고요?
- 응,렇다... (부글부글)
- ... 에이 개 썅놈의 새끼가 있나! (철커덕, 뚜우----)

어? 욕은 내가 해야 되는데... 그 대사 내 껀데... 내가 해야 되는데...
이 놈의 자식이 도리어 나한테 욕을 ㅠ_ㅠ 아흑! 하지만 이 벼룩자식의 고귀한 시간을 무려 3분 이상이나 빨아먹는 데 성공! 그 덕에 어느 순진한 희생자의 피를 빠는 데 들였을 3분의 시간도 빼앗아 버렸다!

아우, 다음엔 사용한 적 없다고 해서 갈 데까지 가 봐야지. 우핫핫핫.



4. 휴대폰, 한전 환급금

좀 전에는 휴대폰으로 엄청나게 엉성한 ARS가 왔다. 자금적으루다가 사정이 아주 딱한 녀석들인가보다. 이번엔 한전 환급금이 84만 얼마가 있는데 내가 안 찾아 간단다. 개가 풀 뜯다 이 쑤시는 소릴... 한전이 나에게 돈 돌려주겠다고 전화를 걸어? 응, 그래... 정일이 형도 북한 포기하겠다고 우리 동네 파출소에 전화를 하더라.

상담원 연결하겠다니까 주민등록번호를 넣으란다. 꾹꾹... 아무 번호나 눌렀더니 잠시 '검색 에러'라는 엉성한 녹음이 나오더니 상담원 연결을 기다리란다. 계속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 모든 상담원들이 상담 중... 나중에 연락드리겠...' 뭐냐 이 빌어먹을 놈들, 바빠서 나의 간절한 상담을 거절하는 거냐!

... 나의 바람이 있다면, 내 사무실 전화번호와 휴대폰 번호가 연변/길림성/기타 간도 지방에 '사기꾼 잡는 공포의 매력덩어리 번호'로 널리 알려지는 것이다. 또는, 이 거렁뱅이와 양아치를 합해 놓은 것같은 미물들을 어떻게 어떻게 잘 꼬셔서 새로운 인생(인지 견생인지)을 살도록 계도해 보는 거다. 후자의 바람은 쉽게 이뤄질 것 같지는 않지만, 전자는 연기력 및 허위 주민등록번호 데이터 쪽을 잘 보강하면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자, 아자, 아자! (사실은 맥 빠진다. 이런 데 속는 사람들은 백이면 구십 구는 돈 없고 마음 약하고 착해 빠진 자들일 텐데, 왜 그런 사람들을 괴롭혀서 뭘 뜯어내냐고! 저기 거지같은 일부(일부?) 정치인들, 불법으로 돈 번 넘들, 폭력 쓰는 넘들한테나 사기를 치지 말이야...) 
CozyrooM.
by CozyrooM | 2008/10/29 18:22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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