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막 잠이 든 (또는 들었다고 느낀?) 순간, 가위에 눌렸다. 자세가 좀 이상하긴(불편하긴) 했다. 어쨌든, 상황은 이런 식으로 전개됐다. 정말 오랜만에 가위에 눌려 보는 것이라 반가웠는지 -_- 그 하나하나를 생생히 기억하게 됐다.
- 분명히 몸은 잠이 들어 있는 것 같은데, 말초감각부터 각성상태에 들어갔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 곧 논리도 동작한다(고 느낀다).
- 신체의 모든 감각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다. 즉, 내 몸의 존재 - 시각 - 청각 - 촉각 등 감각이 동작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 감각이 존재하면 반사적으로 근육운동이 있게 되어 있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힘을 주려고 뇌에서 명령을 내리지만 동작으로 바뀌지 않는다.
- 가슴 속에 메추리알만한 공포 혹은 불안감이 느껴진다. 눈을 뜨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보인다(고 느낀다). 내가 자고 있는 방의 구조, 문의 위치, 침대의 높이, 천장과의 거리 등등을 확인하게 된다.
- 환청이 들리기 시작한다. 일종의 노이즈인데, 귀에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가, 그것이 일종의 패턴으로 바뀌고, 패턴이라는 느낌이 들자마자 일종의 '속삭임'으로 인지하게 된다. 사실 이 때부터 꿈이라기보다는 가위눌림이라는 걸 알아채고, 그 노이즈의 패턴이 말소리로 들리지 않도록 저항하기 시작했다. (좀 빠르고 흥분해 있는, 공격적인 속삭임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막 무서워지는 것이고, 난 그런 '의도하지 않은 감각의 장난'이 아주 불쾌하기 때문이다!)
- 고개를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아내의 어깨에 닿아 있던 손가락을 열심히 까딱거리려고 노력하고, 말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내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가위눌림이지 -_-)
- 하지만 계속 노력을 하고, 내 귀에 들리는 노이즈가 사람의 말소리가 아님을 스스로에게 열심히 인식시키고, 저항하고... 이런 과정 속에서 근육이 살살 움직이기 시작하고, 신음을 낼 수 있었다.
- 결국 아내를 깨울 수 있었고, 나는 가위눌림에서 벗어났다. 자세를 편히 하고, 다시 잠을 청했고, 아주 잘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정확하게 위의 모든 것들이 기억이 나서, 위에서 느낀 감각적 증거들을 기반으로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핵심적인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CozyrooM: "숙삼~(아내의 별명이다 -_-) 가위 눌려 봤어?"
숙사미: "그럼, 눌려 봤지."
CozyrooM: "낯선 곳에서 첫날 잠들 때 가위에 눌려 봤어?"
숙사미: "... 아니."
CozyrooM: "그럼 집이나 아주 익숙한 곳에서만 눌린 거야?"
숙사미: "응. 그런 것 같아."
오케이. 그러나 두 명의 경험으로는 부족하다. 회사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대답은 모두 동일했다. 자신에게 익숙한, 즉, 눈을 감아도 어디에 문이 있고 어디에 창문이 있고 어디에 장롱이 있는지 정도는 충분히 짐작을 하고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에서만 가위에 눌리더라는 것.
종합해 보면 이런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의 뇌에는 인지를 담당하는 영역과 운동을 담당하는 영역이 나뉘어 있는데, 공교롭게도 운동을 담당하는 영역이 먼저 잠들어 버린다거나, 또는 인지를 담당하는 영역이 먼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가위눌림의 순간이라는 거다. 그래서 감각과 일차적인 판단은 가능한데, 그것에 상응하는 운동은 '아직' 불가능한 거다. 그러니 마비되었다거나 눌렸다거나 하는 느낌이 오는 거다.
환상이나 환청은 뭐냐고 물으신다면 '당신의 뇌가 만든 이미지의 반죽에 공포심의 양념을 뿌려 놓은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눈을 감고 있지만 보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눈을 감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머리 속에 세트를 쉽게 꾸며 놓았는데, 주변의 불분명한 자극(잡음)을 '몸이 안 움직여!'라는 공포심과 섞어 놓으니 어떤 으스스한 캐릭터라도 그 세트 안에서 활동하도록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낯선 곳에서 가위에 눌리지 않는 이유는, 낯선 환경에서의 감각과 자신의 환경에 대한 기억을 섞으면 절대 입체적이고 생생한 세트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인식의 영역이 먼저 깨어난다 하더라도 가벼운 수면장애 혹은 꿈으로 끝나게 된다.
에이 씨. 이런 것에 그 동안 속아 왔었군. 이제부턴 가위눌림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것에 도전해 봐야겠다. 공포영화가 고플 때 가위에 눌려 보는 거다 -_-; ← 이렇게 말하면 전가협(전국 가위눌림피해자 협회... 같은 게 있을지 또 아냐-_-)에서 맹렬히 비난하겠지? "이눔새퀴! 니가 가위 맛을 알아?" "가위눌림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지를 모르시는군요." "16년 동안 가위에 눌려 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등등.
요컨대 내가 하고픈 말은, 불가항력인 것과 불가항력이 아닌 것, 불가지한 것과 불가지하지 않은 것 사이를 쉽게 구분하려 들지 말자는 거다. 가위눌림에 시달리는 분이여, 지금부터 그렇게 감각에 휘둘리면서 나는 피해자요!를 외치느라 시간을 보내지 말고, 지금부터 감각신경을 좀 운동시켜라! 다양한 것들을 보고, 즐거운 대화를 하고, 재미있는 교양을 쌓고, 그런 다음 충분히 눈코입귀를 쉬게 해 보라! 몸은 살아 있어도 감각이 먼저 휴식을 요청해 올 거다. 그 때 자라. 여전히 정신이 사납다 해도 그것은 더 이상 가위눌림이 아니라 달콤한 꿈이 될 거다.
Cozyr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