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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명성황후] 올바른 관계를 위해 드러내어야 할, 숨겨진 이야기 하나. (1) 4. 보고서엔 어떤 내용 들어 있나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원인과 발단에서부터 실행자와 사후 대책까지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는 '에조 보고서'의 분량은 각 2쪽씩을 차지하고 있는 목차와 서문을 포함해 모두 12쪽이다. 아울러 보고서는 (1)발단 (2)명의 (3)모의자 (4)실행자 (5)외국사신 (6)영향 등의 소제목이 붙어 있는 6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기자는 이 보고서를 김진명씨로부터 입수한 뒤 일본어에 정통한 전문가에게 번역을 맡겼다. 그러나 주로 고어(古語)와 사어(死語)로 쓰여 있어 도저히 완벽한 번역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만 보고서에 한자로 표기된 '부덕의(不德義)' '경솔천만(輕率千萬)' '직무상 책임(職務上 責任)' '주모자(主謀者)는 미우라 공사(三浦 公使)' 등의 표현이, "미우라 공사의 책임과 처벌을 암시하는 내용이 들어 있고, 사후에 은폐되고 조작됐다는 의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유일한 문서"라는 김진명씨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기자는 이번 취재 과정에서 겐타로보다 좀더 자세하게 '에조 보고서' 내용을 인용한 서적을 발견하는 의외의 성과를 얻었다. 친일문제전문가인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일본 서적들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뒤지던 중 찾아낸 <외교문서로 말하는 일한병합>(합동출판, 1996)이 바로 그것이다. 재일 사학자 김응룡씨가 쓴 이 책은 '에조 보고서' 전문 중 10분의 1 정도만 인용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나온 어떤 저술보다도 풍부하게 보고서 내용을 소개하고 있었다. 다음은 이 책에 서술된, '에조 보고서'의 주요 내용에 대한 설명이다. "에조는 법제국장 앞으로 보낸 보고서 안에서, 왕비 살해를 일본의 모든 이들이 생각하고 있었다고 보고서 머리에 적고 있다. 왕비 살해의 필요성은 미우라도 일찍부터 생각해 오고 있었다고 말하고, 일본의 수비대가 주력이었던 일, 왕비 살해와 사체에 대한 능욕의 상황을 자세하게 적고 있다.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을 외국인들에게 보인 데다, 이 외국인들과 언쟁까지 벌인 일과 대궐에서 난동을 끝내고, 보기 흉한 몰골로 대궐에서 철수하는 것을 대궐 앞 광장에 몰려든 조선인 군중들과 서둘러 성안으로 들어가는 러시아 공사에게도 보이고 말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사체에 대한 능욕"이란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 역시 명성황후의 최후와 관련해서는 야마베 겐타로의 해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보고서에 담긴 진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편 김진명씨는 '에조 보고서'와 관련해 기자에게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의 발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한국인들은 명성황후가 난자 당해 죽은 걸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다만 '에조 보고서'의 존재를 접한 극소수의 일본인과 한국인 학자들만이 명성황후가 살해당한 뒤 시간된 걸로 주장하고 있다. 나조차도 그런 기존의 해석에 따라 <황태자비 납치사건>에서 시간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는 '에조 보고서'를 자세히 읽어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다시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명성황후 최후의 장면을 기록한 유일한 문서인 '에조 보고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명성황후가 시해 직전 즉 살아 있는 동안 능욕당하고 불태워지면서 죽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명성황후는 시간(屍姦)을 당한 것이 아니라 강간(强姦)을 당한 것이다." ▲ 에조 보고서 "특히 무리들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왕비(王妃)를 끌어내어 두세 군데 칼로 상처를 입혔다(處刃傷). 나아가 왕비를 발가벗긴(裸體) 후 국부검사(局部檢査)(웃을(笑) 일이다. 또한 노할(怒) 일이다)를 하였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기름(油)을 부어 소실(燒失)시키는 등…" 그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에조 보고서'에서 능욕 장면을 묘사한 대목을 직접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고서에서 실제로 그 부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주요 한자 표기 그대로 살렸음-기자주). "특히 무리들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왕비(王妃)를 끌어내어 두세 군데 칼로 상처를 입혔다(處刃傷). 나아가 왕비를 발가벗긴(裸體) 후 국부검사(局部檢査)(웃을(笑) 일이다. 또한 노할(怒) 일이다)를 하였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기름(油)을 부어 소실(燒失)시키는 등 차마 이를 글(筆)로 옮기기조차 어렵도다. 그 외에 궁내부 대신을 참혹한 방법으로 살해(殺害)했다." 그는 이 부분을 소리 내서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은 뒤 이렇게 주장했다. "보고서 어디에도 살해한 뒤 능욕을 했다는 논리의 근거가 없다. 이 주장은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야마베 겐타로의 해석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따른 것에 불과하다. 겐타로는 1966년 보고서 전문을 소개하지 않은 채 이 부분만 따로 떼어내 소개한 뒤 '사체를 능욕했다'고 해석해 버렸고, 이것이 한국에서까지 그대로 정설로 통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에조 보고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사람을 죽였을 때는 반드시 '살해'라는 구체적인 표현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뒤에 나오는 '궁내부 대신 살해'라는 대목이 결정적인 방증이다." 실제로 시해 장면을 묘사한 '에조 보고서'를 뒷받침하는 증언과 자료들은 많다. "일본인 흉한들은 왕비를 내동댕이치고 구둣발로 가슴을 세 번이나 내리 짓밟고 칼로 찔렀다"(왕세자 이척의 증언) "왕비는 뜰 아래로 뛰어나갔지만 붙잡혀 넘어뜨려졌고 살해범은 수 차례 왕비의 가슴을 짓밟은 뒤에 칼로 거듭 왕비를 찔렀다"(영국 영사관 힐리어가 북경의 오코너에게 보낸 보고서) 등이 대표적이다. ▲'뮤지컬 명성황후'중에서 다만 그들은 명성황후가 그렇게 칼에 찔려 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김진명씨는 이렇게 반론을 펼쳤다. "그들은 최후의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아니다. 나중에 궁녀 등에게 전해들은 얘기를 다시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 더욱이 '에조 보고서' 이외의 어떤 기록에도 '능욕' 부분은 나오지 않는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피해자인 명성황후와 가해자인 일본인들이다. 그러나 명성황후는 죽었고, 일본인들은 진실을 철저하게 은폐하고 조작했다. 가해자 중의 한 명이면서도 미우라 일파와 입장을 달리 했던 에조의 증언이 가장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창밖을 응시하며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그가 마침내 다시 말문을 열었다. "결국 일본인들은 명성황후를 시간한 것이 아니라 강간한 것이다. 진보적 역사학자로 알려져 있는 야마베 겐타로조차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이 끔찍한 만행에 놀라 보고서 전문은 소개하지 않고 '사체 능욕'이라고 축소해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한 주권 국가의 왕비에게 만행을 저지른 것과 그것을 은폐하고 조작한 것에 대해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한국인들 역시 처참하게 능욕 당하면서 죽어간 명성황후의 원혼을 풀어줘야 할 책임이 있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는 오늘, 우리는 "나의 억울한 죽음을 잊지 말라"는 명성황후의 단말마적 외침을 가슴으로 생생히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진명 인터뷰 "역사왜곡에 종지부 찍을 문서" '에조 보고서' 전문이 발견됨으로써 <황태자비 납치사건>에 등장하는 '435호 비밀문서'는 실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소설의 작가이자 보고서 전문을 찾아낸 김진명씨를 만나 보았다. -'에조 보고서'를 찾아 헤맨 까닭은 무엇인가. "한국민과 대다수 선량한 일본인의 기대와는 달리, 역사 교과서 왜곡이나 망언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양국의 역사인식 차이는 좁혀질 줄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그 이유가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자국의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본인이 직접 쓴 이 보고서를 찾아내 그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한일 양국의 역사인식이 평행선을 달린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다는 것인가. "예컨대 한국인들은 군위안부나 징용을 얘기하면 일본인들이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군위안부를 말하면, 그들은 전표를 내놓는다. 즉 군부대를 따라다니며 돈을 벌던 여자들이라는 식의 논리다. 징용을 얘기하면, 그들은 다시 봉급명세서를 내놓는다. 징용자는 돈을 벌러 일본으로 온 노동자라는 것이다. 조선 병합과 수탈에 대해서는 서구 열강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려고 했다는 식의 논리를 내놓고, 실제로 이런 것들을 자국의 국민들에게 가르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나는 일본인들이 모두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역사를 제대로만 알면 반성하고 사과할 줄 안다. 지난번 후쇼샤의 교과서 채택 거부운동에서 보았듯이 역사왜곡에 종지부를 찍을 사람들도 결국은 일본의 선량한 시민들이다. 나는 일본의 정부, 언론, 학계가 도저히 변명할 수 없는, 그리고 어떤 논리로도 호도할 수 없는 결정적인 역사적 사건, 일본인들이 정말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사료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당시 현장에 있던 일본인이 작성해 본국으로 보낸 이 '에조 보고서'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는 최고의 사료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선 아직도 일제의 침략과 만행이나 친일 잔재 청산을 말하면 '과거지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반공과 반북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남북한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증오하고 갈등하게 만든 분단과 전쟁의 뿌리는 일제의 침략과 압제였다.그리고 그 '불행의 씨앗'은 107년 전 어느 날 새벽에 발생한 이 나라 '국모'의 억울하고 참혹한 죽음이었다. 그러므로 명성황후의 비극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2002/06/03 오후 3:32 ⓒ 2002 OhmyNews 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전문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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