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 사건이 있다. 그 살인 사건은 이러저러한 일련의 배경을 가지고 일어났고, 그 결과는 이러저러한 영향을 미친다. 살인 사건에 대한 보고서의 서술은 객관적이고 무감성(無感性)하다. 그렇지 않은 보고행태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니까 논외로 해야겠고. 사건을 다루는 것은 보고서 혹은 뉴스만이 아니다. 영화도 사건을 다룬다. 영화는 보고서와 달리, 작가의 의도에 따라 사건을 재구성하고 시공간적으로 다양하게 편집해서 제시한다. 우리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든 그렇지 않든) 어떤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아닌 영화를 보는 이유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그 진행을 즐기기 위해서이다. 영화예술의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따라서 영화 감독은 관객이 이러한 목적에 편안하게 기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영화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우리가 왜 보고서를 읽지 않고 영화를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거의 완벽한 답변이다. 1. 스토리 조잡하지 않고 간결한 '사건'의 뿌리 위에, '인간의 감정 혹은 실존'이라는 실뿌리가 자욱하게 얽힌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충분한 여백을 갖고 있어서, 관객 저마다의 상상력이 스며들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 (개봉 중인 영화인지라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다. 구구절절이 칭찬을 늘어놓고 싶은데.) 2. 구성/편집 이 영화의 구성과 편집은 충분히 대중적이면서 충분히 예술적이다. 대중에게 (즐기는 정도에 따라) 지극한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구성과 편집이라면 영화로서 성공이다. 이는 타협이 아니라 친절일 뿐이다. 실제로 이야기를 시간과 공간, 청각과 시각의 힘(혹은 약점)을 빌려 풀어 나가는 봉준호 감독의 실력은 대단히 정교하고 과학적이며 동시에 시적이다. 3. 촬영/미장센 한 장면, 한 장면 연출의 공을 들인 것이 와 닿는다. 봉준호 감독의 (그리고 그와 함께 한 촬영감독들의) 작품들은 다 그렇듯이, 고맙게 느껴질 정도다. 관객의 이해가 어떤 경우에는 좀 쉽게, 어떤 경우에는 좀 까다롭게 장면을 설정하고, 구도와 색상과 질감과 세부묘사에 있어 풍부한 맛이 우러나도록 퇴고를 거듭한 것이 느껴진다. 여러 번 봐도 질리지 않고 새로운 맛을 끄집어낼 수 있게 해 놓았다. 4. 연기 무슨 말이 필요하랴. 김혜자의 '신 내린 연기'는 이제 그 수사 자체가 진부한 것이 될 정도로 영화의 완성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잘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세간의 평가가 섭섭하실 김혜자 선생. 원빈의 연기 또한 뛰어나다. 특히나 중간 중간에 툭툭 뱉어내는 결정적인 대사의 힘은 소름이 돋게 한다. 조연들의 감초 연기도 자연스러워서, 무서우면 무서운대로 우스우면 우스운대로 맛이 좋았다. (다만, 조명에 잡히는 김혜자씨의 피부 상태가 너무 좋았다는 것만큼은 좀 아쉽다. 물론 평소의 김혜자씨가 좋은 피부를 갖고 계시기를 나는 바라지만...) 이 영화는 크고 작은 이야깃거리 또는 생각거리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뛰어나다 (실제로, 이 영화의 감상 중에는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깊어지는 것이 있고, 홀로 조용히 생각함으로써 넓어지는 것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특히나 돋보이는 점은, 이토록 간결한 이야기 구조를 이토록 긴장감 있게 풀어내는 데 있어 영화(그리고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 행위)보다 더 훌륭한 매체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사건 그 자체로서는 간단하다. 하지만 그 사건을 벌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실체는 (그 입장이나 정체성은) 자주 모호하다. 오로지 '어머니'만 한 방향으로 언제나 지독하게 뚜렷하다. 이러한 갈등은 봉준호 감독의 다양한 영화적 장치에 의해 숨이 턱턱 막히고 소름이 쪽쪽 돋을 정도로 증폭된다. 영화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으로 이러한 사건에서 즐거움과 슬픔과 깨달음과 새로운 시각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이 영화는 그 자체로서 대단히 뛰어난 표현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영화 교재다. 생각이 적당히 깊으면 재미가 없고, 재미가 적당히 있으면 깊이가 없는 많은 영화들 속에서, 봉준호 감독은 생각이 아주 깊으면 재미도 덩달아 생긴다는 고래(古來)의 지혜를 한 장면 한 장면 알려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봉 감독님.) 덧붙여, 그간의 영화 이력을 볼 때 (그리고 사실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지만), 봉준호 감독의 인간에 대한 시각은 근본적으로 참 따뜻하다는 것이 다시금 확인되는 듯 하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천재적 재능과, 평범한(?) 인간으로서 지녀야 하는 든든한 휴머니티와 철학이 공존하는 뛰어난 감독이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꼭. Cozy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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