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디지털 사진 - 일상과 그 평가
한참 글을 쓰는 것을 즐기던 시절, 어떤 사람이 제 글을 보고 다분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포스트모던 작가 몇 명의 이름을 읊었습니다. 기억나는 이름으로는 '데리다'가 있었습니다. ('모호성'이 그 사람의 키워드이더군요. 내 글이...? 아니면 내 입장이...?) 사실 그 당시 저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거의 몰랐었고, 우연히 단편집을 통해 알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외하고는 순수문학 쪽은 그다지 즐겨 읽지도 않았습니다. 글을 읽는 것보다는 글을 쓰는 것을 더 좋아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제 글을 이렇게 저렇게 분석했고, 결론은 '포스트모던'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헛소리를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혀 문학수업이 없었던 자의 글이 당대의 주류 문학을 닮아 있다? 이런 주장이 아주 약간이라도 맞는 말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제 감성 자체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알게모르게 훈련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온라인 글쓰기가 점점 보편화되면서, 글을 저처럼 쓰는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듯 보입니다. 당시에는 조금 튀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죠.

요컨대 '그 사람'이 제 글을 보고 특이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 사람의 관점이 과거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이든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이든, 그 평가의 관점이 근본적으로 동시대적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원인은 어쩌면 그 사람이 과거의 경험물들로부터 저보다 훨씬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게는 그저 일상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가히 평론의 대상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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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사야겠다는 생각 - 뭔가 기록하고 싶다, 글이 아닌 영상으로도 기록하고 싶다, 그림이 안 되면 사진으로라도 특정 시점의 내 시선과 감정을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사실 필름 카메라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가 1996년에서 1997년 사이. 저는 선천적으로 체계적인 정리/관리라든가 직관적이지 않은 인터페이스 등과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찍어서 비닐봉투나 앨범에 담겨지는 사진은 정말 싫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찍고 나서 현상소에 가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끊임없이 소모품비가 들어가는 시스템도 싫었습니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직접 암실을 차려야 한다는 것도 끔찍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디지털 카메라'라는 옵션이 등장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필름 카메라가 전부였다면 이런 모든 작업들이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사진을 '기록 도구'로 고려하지조차 않았을 수도 있겠죠.

아무튼 제 '사진활동'은 애초부터 그렇게 디지털로 시작됐습니다. 이후 몇 번 필름 카메라를 만져 봤고, 디지털에서의 경험 덕에 필름 사진도 괜찮은 것이 몇 장 있었지만, 필름 카메라는 저에게 있어 '트랙터를 가진 사람이 보는 쟁기' 정도를 넘지 못했습니다. 물론 기계적 성능이야 당시의 디지털로는 따라갈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만큼 좋은 필름 카메라들이 있었지만(또 지금도 약간은 그렇지만), 제게는 촬영 순간만큼이나 촬영 이후, 촬영 외의 일들이 중요했습니다. 당연히 그런 면에서 디지털은 필름과는 아예 차원이 다를 정도의 편리함을 선사했습니다. 지금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애초부터 디지털로 사진을 시작한 경우에는 생각없이 마구 찍는다기보다는 필름을 아끼느라 주저하는 부자연스러움을 몸에 익히지 않았다는 쪽으로 생각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필름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LCD를 보고 찍을 수 있는 보급형 디카를 가진 사람들보다 접사에 상대적으로 인색하며, 극단의 앵글을 구사하는 연습도 조금 부족합니다. 또 연사를 하는 것이 적합한 시점에도 셔터룰 누르기를 망설여 합니다. 제가 그동안 보아 온 바로는, 이런 요인들이 상대적으로 피사체를 찾는 시야를 좁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앞서 말한 테크닉들은 필름 카메라의 경우 전문적인 수업이 있고 나서야 시도할 마음이 선뜻 나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디지털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암실작업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디지털의 '거침없음' 때문에, 디지털 카메라에 잡히는 피사체들은 통계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필름 카메라에 담기는 이미지들보다 좀더 하찮아 보이기도 하고, 그저 우연에 의해 건져지는 멋진 작품들의 경우도 상대적으로 많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디지털이 등장하면서 훌륭한 사진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즉, 어쨌든간에 디지털이 표준적인 의미에서의 좋은 사진을 양산할 수도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죠. 이것은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기계적 기능이 뛰어난 작가들 중 창의력이 좀 떨어지는 사람'의 경우 '디지털을 사용하는 어설픈 작가들 중 예술적 감성이 좀 뛰어난 사람'보다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날로그 편향적인 작가 또는 집단이 디지털 사진에 대해 평가하거나, 우려하거나, 심지어 폄하하는 것을 볼 때마다 패러다임의 차이를 느낍니다. 기능으로서 먼저 사진에 접근하는 패러다임과, 감성으로서 먼저 사진에 접근하는 패러다임. 물론 이상적인 사진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할 필요조차도 없겠죠. 어쨌든 사진에 접근하는 방법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은 필름 카메라 세대(또는 필름 카메라의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연구대상일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그동안 사진의 중심이 카메라였다면, 디지털 시대 이후부터는 그 중심이 이미지 자체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이런 관점의 이동은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작가에게나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카메라 가격은 점점 떨어지고, 작품 사진의 수준은 전반적으로(특히 기능적인 면에서) 상승하며, 예술적 감성과 상상력이 지배하는 사진세상 - 디지털에게는 일상이겠지만 아날로그에게는 충격적인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디지털이 주류가 되는 때가 오면 지금의 충격은 그저 잠시의 이야기거리에 불과하게 되겠죠. ...하여간, 전부 아마추어 영역에서의 이야기들입니다. :)


갑자기 횡설수설하고 싶어진
CozyrooM.
200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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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R클럽 캠페인 짧은 답글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서로에 대한 배려는 네티켓의 기본입니다.




young54
충분히 좋은 글, 공감할 부분이 많은 글입니다. 그러나 "기계적 기능이 뛰어난 작가들 중 창의력이 좀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글은 경우에 따라 필름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 하시기 바랍니다. CozyrooM님은 어떠하신지 모르지만 "인간은 일단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몇몇의 문구를 문제 삼을 수도 있으며, 그것은 이 글을 쓰는 CozyrooM님 조차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미에 "전부 아마추어 영역에서의 이야기"라고 슬쩍 피해(?) 가셨는데, 과연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페셔널이 상업적 사진 외에 Pine Art영역을 얼마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가요? 특히 사진의 부분에서는 프로와 아마의 영역이 모호하기 때문에 "초보와 달인"의 차이로 나누는 것 외에는 무의미 하다고 봅니다. 앞으로는"아마추어 영역"이라는 용의주도한 장막으로 보호받으려 하지 말기를 우리 에셀알회원 모든분께 당부 드립니다. 2002-07-04
08:20:57



현카피
잘 정리된 좋은 글입니다.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결국은 디지탈 월드의 패러다임 속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이야기이니까요. 그러나 접근기회의 부여 범위가 늘어난다는 긍정적인 현상이 '주관성' 혹은 '상대성'이라는 보호 하에 저급한 이미지의 양산이라는 별로 긍정적이지 않은 현상을 수반하게 되는 것 또한 필연적인 것 같습니다. 누구도 욕먹기 싫어 함부로 말하기 주저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지요. 2002-07-04
08:25:07



Velvia
세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어쩜 제 생각과 이리 똑같을 수가^-^ 2002-07-04
09:20:01



NePo
필름이던 디지탈이던 얼마나 생각을 하고 공을 들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2-07-04
10:00:20



FlySolo
이 글은 정말 명문이네요. 패러다임의 차이라는 말씀, 정말 110% 공감합니다. 2002-07-04
10:20:37



Memory
사진은 이미지 자체에 중심이 있다는 부분이 특히 와닿습니다.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름이냐 디지털이냐보다는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어떠한 형상을 하고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듀안 마이클스의 사진들은 분명히 이미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듯합니다.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시간 나실때 한번쯤 보아둘만한 이미지들이라고 생각됩니다.. 2002-07-04
10:24:47



크로노스
저변이 확대된다는 의미에서는 디지털이 많은 역할을 하는것 같습니다. 저같은 "초보"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이라는 것을 찍으니까요. ^^ 그것이 다른사람이 보기에 정말 "사진"인지 아니면 그 무엇인지.. 저급한 이미지가 양산이 되겠지만 그와함께 "저급하지 않은" 이미지가 생산될 기회를 이전보다는 더 늘이게 되는 것은 아닐지요? 2002-07-04
10:33:20



CozyrooM
young54님(오프라인에서는 선생님으로 불러야 하는 것으로 압니다)의 답글을 받게 되는 것은 개인적으로 작은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문구 중 첫번째는 횡설수설중에도 상당히 신중하게 쓴 부분이었습니다. 그 부분과 그에 이어지는 문단은 기계적 기능과 예술적 감성이 아예 나눠질수도 없는 것이지만 또한 당연히, 동일시될 수도 없다는 뜻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예전에는 예술적 감성이 뛰어난 사람도 기능적인 한계에 막혀 뜻을 펼 수 없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창조력만으로 승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뜻으로 쓴 것입니다. 실제로 "창의력이 좀 떨어지는 사람"이 아닌 작가의 경우에는 디지털 시대건 무엇이건을 떠나 언제든 탁월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실질적인 작품들로써 증명되어 있구요.

지적하신 두 번째 문구는 "프로페셔널의 경우에는 이미 기술적, 기능적인 부문의 마스터로서 오로지 작품에 집중할 뿐인 것이고 아날로그 디지털의 경계 같은 것을 문제삼을 일고의 필요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것 자체가 아마추어적이다."라는 뜻으로 붙여 놓은 말입니다. 이것을 young54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받아들이셨다면, 그것은 young54님과 저의 "프로페셔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원인이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직업"이라는 의미에서 약간 벗어나, 말씀을 인용하자면 "달인"의 개념으로서(좀더 정확하게는 이미 기능적 수업을 마친, 작품에만 집중하는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마추어" 운운한 것은 어떤 보호막 속으로의 도피를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왜...? :) )

'직업적 개념으로서의 협의의' 프로페셔널이 Fine Art 영역을 얼마나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답변은 제 주제로는 감히 '얼마 정도'라고 말씀드리기 어렵겠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거의 대부분일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시 이 문제에 어떤 정해진 답변이 있는 것이라면 또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이는 어떤 카메라에 "professional"이라는 로고를 달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나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young54님의 말씀을 읽고, 다음부터는 글을 쓸 때 '초보'와 '숙련자' 정도로 어휘 전환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질적으로 개선할 부분이 많은 사진에 대해서는 초보이건 숙련자이건을 떠나 정중하고 솔직한 조언을, 뛰어난 사진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나 없거나를 떠나 찬사를 아끼지 않는 SLRClub의 분위기를 원합니다. 겸손을 가장한 보호의 장막을 기분좋게 들춰 주는 재치가 있다면 더욱 즐거울 것 같습니다. young54님의 말씀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2002-07-04
10:37:27



CozyrooM
이미지의 저급화에 대한 우려의 말씀들에 대해서는, 위의 제 글에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만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 사진이 아직 저급한 수준이니 그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분들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 매일 느끼는 점입니다...)

하지만 '천재들의 아이디어 도출법'에 대한 관찰을 좀 해 보신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 하고 조심조심 말씀드려 봅니다. 천재들은 상당수가 다작(多作)을 하며, 이 중에는 평범할 뿐더러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것들도 꽤 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애초부터 뭔가를 잔뜩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창조적 노력을 계속하는 에너지를 지녔다는 점에서 타인들과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의 부산물로서 쓸데없는 아이디어, 변변찮은 작품, 진부한 논문들이 쏟아지지만, 그러한 시행착오들을 타인들보다 훨씬 신속하게 극복하고 효율적으로 지식을 관리함으로써 걸작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제가 관찰한 바에 있어서도 그것이 맞는 말 같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이러한 시행착오가 예전보다 훨씬 '편리하게, 대중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순기능으로도 역기능으로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같으면 이런 일들이 어지간한 노력(헛수고일지라도) 없이는 잘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희 공해가 될 지경으로 범람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디지털적 평등'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겠습니다. 막말로 '개나 소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보다 신중할 것'을 요구해야 할까요, 아니면 예전보다 훨씬 '평등하게'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들의 처리/관리 방법을 생각해야 할까요. 어느 쪽이 궁극적으로 효과적일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일차적으로는 개인들에게 '최소한 공적 영역에서는 신중할 것'을 요청해야겠습니다만, 그만큼 각 개인들에게 '공적 영역에 드러내기 이전에 혼자 뭔가를 처리할 수 있는 교양'을 퍼뜨리기 위한 선구자들의 노력도 기울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력의 일환이 SLRClub에서의 고수님들의 조언이 아닐까 합니다. 저를 포함한 초보 창작가들이 지독히도 갈구하고 있지만 또한 지독히도 활성화되고 있지 않은. 2002-07-04
10:56:43



현카피
저도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CorzrooM님의 글쓰기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주제를 드러내는 숙련된 기술과 오독의 여지를 최소화한 문장 등에서 말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이미지의 저급화'에 대해서, 저 자신이 그 문제를 지적하기는 하였으나 오히려 그것을 동반하는 순기능에 더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문제가 되는 '저급'이란 실은 이미지 자체에 대한 것보다 이미지의 생산 과정에 개입하는 인식의 저급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디지탈 카메라로 사진을 처음 접한 분들이 가지는 '필름' 카메라에 대한 인식같은 것 말이지요. 짧은 글에서 정확히 묘사하기는 힘들지만, 이미지의 컨트롤에 대한 과신이라든지, 스스로의 결과물에 대한 지나친 옹호 등도 그 안에 포함되겠지요.

'필름'카메라로도 이러이런 것이 가능하냐,고 묻는 디지탈 카메라 사용자들을 보며 저는 아날로그 옹호자들의 그것 못지 않은 편견과 오해를 느끼곤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아날로그적 배타성이 테크놀러지에 대한 막연한 반감에 기반하는 반면, 디지탈 유저의 그것은 '근원에 대한 무지'에 근거한다는 점입니다. 어느쪽이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지요. 애초, '필름 카메라'라는 말처럼 우스운 말도 없습니다. 그런식의 이름붙이기 라면 우리는 LP를 '구형 CD'혹은 '까만 CD' 정도로 불러야 하겠지요. 어차피 새롭게 나타난 도구에 대해 이름 붙히는 일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단순히 '필름 카메라'라는 단어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 <<필름>> 카메라라고 '필름'에 액센트를 붙이는 새로운 그룹의 사용자들의 인식에 과연 문제가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액센트의 묘한 뉘앙스 속에서, 그들 자신의 주장처럼 과연 도구가 달라진 것 뿐일까 하는 의문이 따오르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저 자신도 '그들'에 포함되지요^^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질수록 생산되는 이미지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그 증가가 설령 전체 퀄리티의 평균값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수반한다고 하여도 '기회의 평등'이라는 엄청난 선물의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라고 담담히 말할 뿐입니다. 어차피 누구도 스스로를 평가할 수 없으니 그 담담한 평가의 칼날이 스스로를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하는 말이지만 말이지요. 2002-07-04
11:36:25



CozyrooM
현카피님의 통렬한 지적 감사히 읽었습니다. 지금 제 안에 남아 있을 지 모르는 편견에 대해, 그리고 덕없이 부족한 사진 공부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2002-07-04
11:49:23



현카피
CorzrooM님의 글을 읽고 갑자기 더 잘 알고 싶다,라는 글쟁이다운 욕망이 들어 갤러리며 게시판들을 돌아다녔습니다. 참 멋진 분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로나마 이런 분을 뵙게 되서 참 다행이고 기쁩니다. 반갑습니다^^ 2002-07-04
11:58:32



CozyrooM
헉... 저야 현카피님께 감히 반갑다는 말씀을 드리지도 못 할 수준입니다. 귀엽게 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려주시는 글 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얼굴이 달아오르네요...) 2002-07-04
12:08:17



일심
CozyrooM의 좋은 글과 특히 답글에서 자신의 생각과 보는 시각에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을 감정을 자제하고 적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는 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우리 slr클럽의 답글쓰기에 좋은 예를 제시한 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by CozyrooM | 2005/08/21 20:23 | 5 지난 이야기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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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t 2005/11/09 22:15
지나간 글 읽는 재미도 아주 좋습니다. 2002년이 옛날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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