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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누드(와 다른 미술작품들)에 둘러싸여 살았습니다. 그림을 그리시는 어머니 덕에 집 안에는 온갖 화집들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거의 예외없이 상당량의 누드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본가의 벽에는 어머니께서 그리신 반추상 계열의 누드가 걸려 있습니다. 단, 살색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 예전에는 꽤 사실적인 누드 소품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나...?)
성적(性的)인 성숙이 이루어지는 과도기에도 누드에의 접촉은 자연스럽게 계속되었는데, 저는 이 때의 내면적인 경험을 기억하고 있음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었는지 간략히 이야기한다면, (이런 경험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 대해 불경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나, 저는 사실을 사실로서 적고 있을 뿐입니다.) 1. 관능미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그리고 사실성에 상관 없이 성적인 흥분을 얻었습니다. 로댕의 작품 중 젊은 여체의 묘사는 애초부터 알려져 있듯이 관능미에 대한 집요한 추구로 인해서 아주 '모범적인' 성적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앵그르의 고전적인 누드화 역시 관능미를 뛰어난 기술로 신비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약간 인체 비율을 왜곡한 부분이 있죠. 신기한 것이 모딜리아니의 누드인데, 아시다시피 그의 작품 속 인체들은 대부분 아주 심한 형태 왜곡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당시에 출품 거부를 당할 정도로 아주 강한 성적 흥분 요소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아직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모딜리아니의 누드를 아주 꼼꼼히 살필 수 있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이것은 작가의 뛰어난 역량 덕분이겠고, 이 작품의 감상을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론은 아마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매번 달라질 것입니다. 갈등은 끝이 없겠죠. 2. 관능미를 제외한 아름다움에 좀더 집중하고 있는 작품들은 '신기하게도' 제게 아무런 성적 흥분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중세기의 작품, 그리고 인상파의 작품들중 다수가 그랬으며, 특이한 경우로는 클림트와 쉴러, 로트렉 등의 '지독한' 묘사가 있겠습니다. 이들의 누드에 담긴 묘사의 사실적 수준은 춘화에 가까울 정도이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관능이나 교과서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슬픔에 가까운 실존의식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작품이 줄 수 있는 정서적 충격은 성적이다 아니다를 떠나 아주 큼에도 불구하고 감상에 있어 아무런 계몽주의적 제재도 없다는 것입니다. '소재'가 많았던 만큼 청소년기의 성적 호기심 때문에 화집을 들추는 일도 가끔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인체 소묘를 위한 사진집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제가 원하던 만큼'의 흥분을 얻지는 못 했습니다. 그 원인은 아마도 알게모르게 미적으로 '훈련'된 시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제 감성은 어쩌면 평균적인 수준보다 더 풍부하게 발달하였을 것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흥분의 제어력 역시 발달했던 것 같습니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어떤 이미지 속에 담겨 있는 성적인 기호를 비교적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이 학습된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원인은 제가 '다행스럽게도' 미술작품을 많이 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정보의 흐름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인터넷의 교육적 가능성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화가인 사람만이 많은 소재를 접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성인이 된 지 한참인 지금, 제 컴퓨터 안에는 소위 '화끈한' 이미지들이 꽤 들어 있습니다. 그 목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작품으로서의 누드를 볼 때의 제 반응과 성적 흥분을 목적으로 제작된 누드를 볼 때의 제 반응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예 활성화되는 뇌의 부분 자체가 다릅니다. 누드 작품을 감상할 때 매번 관능적인 반사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전혀 아니며, 누드를 감상하는 능력이 어떤 연령제한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누드에 대한 감상력은 누드를 많이 감상하는 방법으로부터 외에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도 적고 싶습니다. 지금 열리고 있는 '인체의 신비' 전시회에 담긴 실물 인체 표본에 대해 느끼는 감상 역시 이와 일맥상통하겠습니다. 처절하게 분해된 인체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상자의 마음은 '징그럽다, 끔찍하다'에서 '신기하다'로, 그리고 '아름답다'로, 최종적으로는 한두 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종교적 감흥으로 바뀌어 간다고 합니다. 이 전시회의 감상자들은 전시물들을 보면서 받는 반복적인 충격을 금새 내면적으로 정리하고 순화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누드 사진 역시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적 흥분을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촬영된 작품이 아니라면, 비록 초보자라도 유사한 작품의 감상이 반복되면서 곧바로 나름의 시각이 생겨날 것으로 압니다. 이는 성적 흥분이 지배하는 영역과는 아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우리가 '나비나 코끼리, 치타의 누드, 또는 식물의 성기인 꽃'을 볼 때 느끼는 아름다움을 인체 누드에서도 금방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래의 어느 분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여담입니다만, 외국의 여러 성인물 모델로서 특이한 경우의 예로 Vivian Hsu를 들고 싶습니다. 그녀는 로댕이 아주 좋아할 만한 몸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막 꽃이 피고 있는(물론 그녀는 성인이 된 지 아주 한참 지났습니다) 신선함, 은은함. 매끄러움. 고상함... 아주 직접적인, 공격적인 흥분요소를 의식적으로 걷어 내고 보면 그녀의 몸이 주는 아름다움은 아주 공을 들인 도자기를 보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줍니다. 하지만 엄연히 그녀는 성인들의 흥분을 유도하려는 목적을 갖는 사진 속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녀의 묘한 여림과 억눌림의 표현이 역으로 폭발적인 성적 공격성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경우가 '그 한 장의 종이가 얇아지다 못해 너덜너덜해지는' 경우입니다.) 우리는 생명체로 형성되는 그 순간부터 자기 자신의 누드를 경험합니다. 또, 지금도 우리는 자신의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을 때(외부의 시각을 인식하지 않는 환경에서라면) 가장 편안함을,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누드는 인공물, 외부로부터의 간섭과 가려짐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생명의 가장 적나라한 표현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생명'이라는 화두로부터 표현될 수 있는 구체적인 심상으로는 정말 아주 많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오욕칠정으로부터, 어쩌면 삼라만상을 다 끌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드의 역사는 그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만 사진의 역사는 이에 비하면 정말 그 길이가 짧습니다. 발전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빨랐다는 것은 인정해야겠지만. 그러니 사진으로서의 누드의 표현에 대한 연구가 아직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소재도 특수하다보니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특히 한국의 누드 사진들에 적극적 연출 연구가 개입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 번 보고 식상해서 관심을 끊은 바람에 제 식견이 좁아졌을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누드 사진 작품들을 보고 느끼는 일종의 '불안함'은 그런 데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SLRClub의 갤러리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겠습니다. SLRClub의 식구들은 대부분 예술적 영역에 있어 진취적이신만큼, 예술적 감흥을 끌어내는 누드 촬영을 위한 연구 역시 선도해 나갔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열성적인 안무가와 조명 연출가가 합세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팔다리가 짧아 이렇게 감상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 SLRClub 갤러리에서의 누드 사진의 전시는, 한국 법령에 위배되는(즉, 미풍양속을 어찌어찌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 명백한 작품을(작가의 주장에 따라 분류가 쉽지 않겠으나) 'SLRClub의 보호를 위해, SLRClub의 내규가 아닌 상위 법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제한할지언정 창작 누드에 대해 앞으로도 특별히 제한을 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떤 분의 말씀마따나 훨씬 더 강력한 성적 자극을 갖는 사진들을 인터넷에서는 얼마든지 볼 수 있으며, 성적 흥분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SLRClub에 접속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림으로 그려 놓았을 때는 예술이었는데 사진으로 찍어 놓으면 외설이 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이것은 사진과 회화를 동일 시각에서 접근하는 오류에 의한 결과입니다. 뛰어난 누드 사진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회화적 테크닉으로는 불가능한(또는 회화 테크닉을 구사해서 구현할 수 있는 장면이더라도 얻어지는 감흥 자체는 사진적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인체는 바다처럼 깊기 때문일 것입니다. SLRClub에서, 그 바다에서 낚아 올려지는 아름다운 물고기들같은 사진을 많이 발견하는 행복을 누렸으면 합니다. 작품으로 말하고 싶으나 그러기엔 너무도 실력이 부족한 초보 Cozy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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