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밸런스와 관점에 대한 잡생각.
저는 화이트 밸런스(WB)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카메라가 좋습니다. 적절한 선에서 내 마음에 드는 색감이 나오도록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아주 좋습니다. (물론 커스텀 커브를 카메라에서 직접 만들 수 있는 카메라가 있다면 그것도 아주 좋겠습니다만.)

왜냐 하면, 제가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당시의 피사체를 봤을 때의 제 마음이 어땠느냐 하는 것인데, 이 마음을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전체적인 색조이거든요. 그래서 어느 때는 파랗게, 어느 때는 붉거나 초록빛으로 사진의 전체적인 톤을 비틀곤 합니다. 물론 후보정으로 더 많이 손을 보지만, 당장 사진을 찍었을 때 그 느낌을 대강이나마 잡아 두려면 원본에서부터 약간 '물을 들여' 놔야 됩니다.

이런 식의 WB 사용은 어쩌면 WB 기능의 원래 제작 목적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WB는 주변광의 색깔 변화와 상관 없이 언제나 백색광 하에서 사진을 찍는 것과 같은 효과를 위한 거잖아요. 이건 사실 아주 유용한 기능입니다. 그래서 커스텀 WB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도구의 공동구매도 성황리에 마무리가 되고 있는데... (저도 사려 했는데 놓쳤습니다 ㅠ_ㅠ)

근데 저는 이 기능을 촛불이 켜진 방 안이나 가로등 아래의 모습을 찍는 데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제품 사진을 촬영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제품 사진은 그런 조명 아래서 찍을 일도 거의 없거니와, 기껏 발그레한 조명 아래서 발그레하게 웃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찍었는데 WB 칼같이 맞춰서 완전 깔끔 투명한 얼굴을 만드는 건, 적어도 제게는 별로 내키지 않는 일입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푸르스름한 새벽의 숲이 온통 화사한 초록의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도 어색하고 말이죠.

어쩌면 제가 어릴 적에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미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가'보다 '그것이 지금/여기서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가 제게 더 중요합니다. 좋게(어렵게) 말하면 그림 또는 사진이 자기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와 감상자랑 함께 존재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A라는 그림이 B, C와 함께 있으면 ABC로서 존재하고, D, E와 함께 있을 때는 ADE로서 존재하게 된다는 거지요.

물론 본연의 모습은 당연히 아주 중요합니다. '어떻게 보이는가'를 결정하는 45% 정도는 절대적인 본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만 이 절대적 값이 사진이나 그림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갈피 없는 생각을 하다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상념으로 이어져 버렸습니다. 동일한 사실을 놓고서 관점의 차이에 의해 그 해석은 많이 달라지는데,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실을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사실의 진정한 모습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정확하지 않은 화이트 밸런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정확하지 않은 몇 개의 기준이 서로 충돌하고 부딪힙니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될 일을 따지고 들고 결판을 내려 합니다. 별 대단한 것도 아닌데 절대적인 사실을 밝혀내고 싶어서 많은 시간을 들이고 지치도록 힘을 씁니다. 어떻게 보면 동일한 사실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이 있는 만큼 세상이 더 풍요로와지는 것일 뿐일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특히나 경험이 적은 후배들 또는 세상이 바뀌기 전에 경험을 쌓은 선배들과의 대화에 있어 이러한 '생각의 화이트 밸런스'를 미리 감안하는 것은 이야기의 분위기를 좋게 할 뿐 아니라 배움의 수확을 거둘 수 있는 좋은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내 입장을 네가 알아?', '근데 뭐 어쩌라구!' 하면서 서로 섭섭해하기보다는 '네 입장은 그렇구나', '네가 생각하는 대로라면 그렇겠구나'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장치.


결론이야 자기의 몫이겠지만 말이예요
CozyrooM.
by CozyrooM | 2005/12/03 01:52 | 2 짧은 생각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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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정숙조신 at 2005/12/03 02:28
주광색 형광등이 좋아요오오오....인데 미국에서 한참 살다 보니 어느샌가 어둠침침한 백열등(전기료 때문에 사실은 전구색 형광등)이 땡기는 때가 은근히 많아져서 흠칫하기도 한답니다.

...상관없는 얘긴가.

그리고 괜찮으시고 쓰고 있으면 msn 아이디 좀 알려주세요. 가끔이긴 하지만 구글톡도 쓰고 아주아주아주 가끔이지만 AIM도 쓰고는 있으니 그쪽 아이디도 좋고...
Commented by CozyrooM at 2005/12/03 18:14
아, 종주君 반갑...^^
MSN... 파일 전송하는 용도 외에는 안 쓰는데 ^^; cozyroom@korea.com 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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