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5 지난 이야기들
2006/02/27   엘리베이터 실화 두 가지.
2005/08/24   누드 사진에 대한 짧은 생각. [4]
2005/08/21   포스트모던, 디지털 사진 - 일상과 그 평가 [1]
2005/08/17   [명성황후] 올바른 관계를 위해 드러내어야 할, 숨겨진 이야기 하나. (2)
엘리베이터 실화 두 가지.
예전에 SLRClub에 적어 놨던 것. 회사에서 일어난 재밌는 얘기를 모으고 있길래, 옮기다가 문득 생각나서 여기에도 남기다.
 
하루에 겪은 겁니다. 저는 7층에서 근무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이 건물에 4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1층/6층/7층만 운행하기 때문에 애용(?)하고 있습니다.

 
하나.

버튼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7-6-5-4...

누군가가 뒤에 다가와, 플러스펜 뚜껑으로(얇은 옷을 입고 있어서 질감이 바로 느껴지더군요) 제 옆구리를 세로로 사악 그었습니다. 아하하핫 간지러워라. 이 애교있는 장난의 주인공은? 몸서리를 치며 뒤를 돌아보았죠.

"크큭... (누구얏)...?"

"......?"

"......?"

"아, 이거 참... 죄송합니다."

"아, 예, 하하... 뭘요."  (-_-;)

생전 본 적 없는 덩치가 산만한 이 아저씨, 저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나 봅니다. 옆구리의 간지러움이 계속 머물고 있습니다. (근데 어떻게 저렇게 무뚝뚝한 손에서 저렇게 관능적인 자극이 나왔단 말인가.)

4-3-2-1-띵. 엘리베이터가 왔습니다. 이런. 달랑 둘이 타는군요.

"......^^;"

"......*^^*"

"... 제 뒤통수가 그 분(?)하고 많이 닮았나 보지요?"

"... 아... 예... 정말 비슷...^^;"

"......"

"......"

엘리베이터가 정말 정말 천천히 움직입디다. 1-2-3-4-5-6-7-띵.

"수고하십시오.^^;"

"예... 수고하십시오. (후다닥; 그 아저씨)"

사실, 지금도 간지럽습니다. 아우, 플러스펜.



둘.

급히 전달해야 하는 샘플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습니다. 마침 7층에 도착하는 내 전용(?) 엘리베이터! 오케이. 후다닥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또 투닥투닥 달려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 담배 피우러 가는 폼인데? 열림 버튼을 누른 채로 기다려 줬습니다. 바빠도 이 정도는 기다려야지.


꾸역꾸역 올라타는 사람들.

"고맙습니다."

"아, 예. ^^*"

문이 닫히고, 저는 샘플이 든 상자를 보며 이후에 할 일들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특유의 적막, 그 속에 사람들이 속닥속닥 하는 소리들. 1층에 다다르기를 기다립니다. 사람이 가득찬 엘리베이터 안의 열기가 저는 좀 싫습니다.

"......(속닥속닥)"

"......(두런두런)"

꽤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이번에도 엘리베이터가 좀 늦네?) 문이 열립니다. 원래 음성안내방송('1층입니다~')이 나오게 되어 있는데, 조용하네요. 고장인 게로지. 갖혀 있던 사람들이 심호흡을 하면서 본능적으로 밀려 나갈 준비를 합니다. 스스르륵 문이 열리면서,

"휴우~ ...... ...... ......?"

"......?"

"7층이잖아."

사람들의 시선이 제게 꽂힙니다. 층 수 누르는 곳에 제가 서 있었거든요. 그것도 버튼이 있는 곳에 등을 대고... 예, 맞습니다. 저 1층 버튼 안 눌렀습니다. 공교롭게도 다른 사람들 역시 서로 속닥속닥 이야기하느라고 아무도 문 위에 달린 층 표시를 보고 있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밖에 있던 누군가가 '서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내려가기 위해 스위치를 누른 거구요.

"이런... 죄송합니다."

"... 하하, 하하. 이런." -_-;

"... 하하, 예."

다시 다들 올라타고(밖에 계시던 한 분 어리둥절 같이 타고), 내려갑니다.

역시, 엘리베이터가 정말 정말 천천히 움직입디다. 저는 숨도 못 쉬고 있었습니다. ㅠㅠ

CozyrooM.

by CozyrooM | 2006/02/27 11:44 | 5 지난 이야기들 | 트랙백 | 덧글(0)
누드 사진에 대한 짧은 생각.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누드(와 다른 미술작품들)에 둘러싸여 살았습니다. 그림을 그리시는 어머니 덕에 집 안에는 온갖 화집들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거의 예외없이 상당량의 누드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본가의 벽에는 어머니께서 그리신 반추상 계열의 누드가 걸려 있습니다. 단, 살색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 예전에는 꽤 사실적인 누드 소품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나...?)

성적(性的)인 성숙이 이루어지는 과도기에도 누드에의 접촉은 자연스럽게 계속되었는데, 저는 이 때의 내면적인 경험을 기억하고 있음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었는지 간략히 이야기한다면, (이런 경험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 대해 불경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나, 저는 사실을 사실로서 적고 있을 뿐입니다.)

1. 관능미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그리고 사실성에 상관 없이 성적인 흥분을 얻었습니다. 로댕의 작품 중 젊은 여체의 묘사는 애초부터 알려져 있듯이 관능미에 대한 집요한 추구로 인해서 아주 '모범적인' 성적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앵그르의 고전적인 누드화 역시 관능미를 뛰어난 기술로 신비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약간 인체 비율을 왜곡한 부분이 있죠. 신기한 것이 모딜리아니의 누드인데, 아시다시피 그의 작품 속 인체들은 대부분 아주 심한 형태 왜곡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당시에 출품 거부를 당할 정도로 아주 강한 성적 흥분 요소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아직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모딜리아니의 누드를 아주 꼼꼼히 살필 수 있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이것은 작가의 뛰어난 역량 덕분이겠고, 이 작품의 감상을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론은 아마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매번 달라질 것입니다. 갈등은 끝이 없겠죠.

2. 관능미를 제외한 아름다움에 좀더 집중하고 있는 작품들은 '신기하게도' 제게 아무런 성적 흥분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중세기의 작품, 그리고 인상파의 작품들중 다수가 그랬으며, 특이한 경우로는 클림트와 쉴러, 로트렉 등의 '지독한' 묘사가 있겠습니다. 이들의 누드에 담긴 묘사의 사실적 수준은 춘화에 가까울 정도이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관능이나 교과서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슬픔에 가까운 실존의식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작품이 줄 수 있는 정서적 충격은 성적이다 아니다를 떠나 아주 큼에도 불구하고 감상에 있어 아무런 계몽주의적 제재도 없다는 것입니다.

'소재'가 많았던 만큼 청소년기의 성적 호기심 때문에 화집을 들추는 일도 가끔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인체 소묘를 위한 사진집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제가 원하던 만큼'의 흥분을 얻지는 못 했습니다. 그 원인은 아마도 알게모르게 미적으로 '훈련'된 시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제 감성은 어쩌면 평균적인 수준보다 더 풍부하게 발달하였을 것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흥분의 제어력 역시 발달했던 것 같습니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어떤 이미지 속에 담겨 있는 성적인 기호를 비교적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이 학습된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원인은 제가 '다행스럽게도' 미술작품을 많이 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정보의 흐름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인터넷의 교육적 가능성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화가인 사람만이 많은 소재를 접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성인이 된 지 한참인 지금, 제 컴퓨터 안에는 소위 '화끈한' 이미지들이 꽤 들어 있습니다. 그 목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작품으로서의 누드를 볼 때의 제 반응과 성적 흥분을 목적으로 제작된 누드를 볼 때의 제 반응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예 활성화되는 뇌의 부분 자체가 다릅니다.

누드 작품을 감상할 때 매번 관능적인 반사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전혀 아니며, 누드를 감상하는 능력이 어떤 연령제한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누드에 대한 감상력은 누드를 많이 감상하는 방법으로부터 외에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도 적고 싶습니다. 지금 열리고 있는 '인체의 신비' 전시회에 담긴 실물 인체 표본에 대해 느끼는 감상 역시 이와 일맥상통하겠습니다. 처절하게 분해된 인체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상자의 마음은 '징그럽다, 끔찍하다'에서 '신기하다'로, 그리고 '아름답다'로, 최종적으로는 한두 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종교적 감흥으로 바뀌어 간다고 합니다. 이 전시회의 감상자들은 전시물들을 보면서 받는 반복적인 충격을 금새 내면적으로 정리하고 순화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누드 사진 역시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적 흥분을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촬영된 작품이 아니라면, 비록 초보자라도 유사한 작품의 감상이 반복되면서 곧바로 나름의 시각이 생겨날 것으로 압니다. 이는 성적 흥분이 지배하는 영역과는 아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우리가 '나비나 코끼리, 치타의 누드, 또는 식물의 성기인 꽃'을 볼 때 느끼는 아름다움을 인체 누드에서도 금방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래의 어느 분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여담입니다만, 외국의 여러 성인물 모델로서 특이한 경우의 예로 Vivian Hsu를 들고 싶습니다. 그녀는 로댕이 아주 좋아할 만한 몸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막 꽃이 피고 있는(물론 그녀는 성인이 된 지 아주 한참 지났습니다) 신선함, 은은함. 매끄러움. 고상함... 아주 직접적인, 공격적인 흥분요소를 의식적으로 걷어 내고 보면 그녀의 몸이 주는 아름다움은 아주 공을 들인 도자기를 보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줍니다. 하지만 엄연히 그녀는 성인들의 흥분을 유도하려는 목적을 갖는 사진 속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녀의 묘한 여림과 억눌림의 표현이 역으로 폭발적인 성적 공격성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경우가 '그 한 장의 종이가 얇아지다 못해 너덜너덜해지는' 경우입니다.)

우리는 생명체로 형성되는 그 순간부터 자기 자신의 누드를 경험합니다. 또, 지금도 우리는 자신의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을 때(외부의 시각을 인식하지 않는 환경에서라면) 가장 편안함을,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누드는 인공물, 외부로부터의 간섭과 가려짐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생명의 가장 적나라한 표현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생명'이라는 화두로부터 표현될 수 있는 구체적인 심상으로는 정말 아주 많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오욕칠정으로부터, 어쩌면 삼라만상을 다 끌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드의 역사는 그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만 사진의 역사는 이에 비하면 정말 그 길이가 짧습니다. 발전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빨랐다는 것은 인정해야겠지만. 그러니 사진으로서의 누드의 표현에 대한 연구가 아직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소재도 특수하다보니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특히 한국의 누드 사진들에 적극적 연출 연구가 개입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 번 보고 식상해서 관심을 끊은 바람에 제 식견이 좁아졌을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누드 사진 작품들을 보고 느끼는 일종의 '불안함'은 그런 데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SLRClub의 갤러리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겠습니다.

SLRClub의 식구들은 대부분 예술적 영역에 있어 진취적이신만큼, 예술적 감흥을 끌어내는 누드 촬영을 위한 연구 역시 선도해 나갔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열성적인 안무가와 조명 연출가가 합세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팔다리가 짧아 이렇게 감상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

SLRClub 갤러리에서의 누드 사진의 전시는, 한국 법령에 위배되는(즉, 미풍양속을 어찌어찌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 명백한 작품을(작가의 주장에 따라 분류가 쉽지 않겠으나) 'SLRClub의 보호를 위해, SLRClub의 내규가 아닌 상위 법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제한할지언정 창작 누드에 대해 앞으로도 특별히 제한을 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떤 분의 말씀마따나 훨씬 더 강력한 성적 자극을 갖는 사진들을 인터넷에서는 얼마든지 볼 수 있으며, 성적 흥분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SLRClub에 접속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림으로 그려 놓았을 때는 예술이었는데 사진으로 찍어 놓으면 외설이 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이것은 사진과 회화를 동일 시각에서 접근하는 오류에 의한 결과입니다. 뛰어난 누드 사진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회화적 테크닉으로는 불가능한(또는 회화 테크닉을 구사해서 구현할 수 있는 장면이더라도 얻어지는 감흥 자체는 사진적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인체는 바다처럼 깊기 때문일 것입니다. SLRClub에서, 그 바다에서 낚아 올려지는 아름다운 물고기들같은 사진을 많이 발견하는 행복을 누렸으면 합니다.


작품으로 말하고 싶으나
그러기엔 너무도 실력이 부족한 초보
CozyrooM.
by CozyrooM | 2005/08/24 09:13 | 5 지난 이야기들 | 트랙백 | 덧글(4)
포스트모던, 디지털 사진 - 일상과 그 평가
한참 글을 쓰는 것을 즐기던 시절, 어떤 사람이 제 글을 보고 다분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포스트모던 작가 몇 명의 이름을 읊었습니다. 기억나는 이름으로는 '데리다'가 있었습니다. ('모호성'이 그 사람의 키워드이더군요. 내 글이...? 아니면 내 입장이...?) 사실 그 당시 저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거의 몰랐었고, 우연히 단편집을 통해 알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외하고는 순수문학 쪽은 그다지 즐겨 읽지도 않았습니다. 글을 읽는 것보다는 글을 쓰는 것을 더 좋아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제 글을 이렇게 저렇게 분석했고, 결론은 '포스트모던'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헛소리를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혀 문학수업이 없었던 자의 글이 당대의 주류 문학을 닮아 있다? 이런 주장이 아주 약간이라도 맞는 말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제 감성 자체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알게모르게 훈련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온라인 글쓰기가 점점 보편화되면서, 글을 저처럼 쓰는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듯 보입니다. 당시에는 조금 튀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죠.

요컨대 '그 사람'이 제 글을 보고 특이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 사람의 관점이 과거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이든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이든, 그 평가의 관점이 근본적으로 동시대적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원인은 어쩌면 그 사람이 과거의 경험물들로부터 저보다 훨씬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게는 그저 일상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가히 평론의 대상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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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사야겠다는 생각 - 뭔가 기록하고 싶다, 글이 아닌 영상으로도 기록하고 싶다, 그림이 안 되면 사진으로라도 특정 시점의 내 시선과 감정을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사실 필름 카메라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가 1996년에서 1997년 사이. 저는 선천적으로 체계적인 정리/관리라든가 직관적이지 않은 인터페이스 등과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찍어서 비닐봉투나 앨범에 담겨지는 사진은 정말 싫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찍고 나서 현상소에 가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끊임없이 소모품비가 들어가는 시스템도 싫었습니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직접 암실을 차려야 한다는 것도 끔찍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디지털 카메라'라는 옵션이 등장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필름 카메라가 전부였다면 이런 모든 작업들이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사진을 '기록 도구'로 고려하지조차 않았을 수도 있겠죠.

아무튼 제 '사진활동'은 애초부터 그렇게 디지털로 시작됐습니다. 이후 몇 번 필름 카메라를 만져 봤고, 디지털에서의 경험 덕에 필름 사진도 괜찮은 것이 몇 장 있었지만, 필름 카메라는 저에게 있어 '트랙터를 가진 사람이 보는 쟁기' 정도를 넘지 못했습니다. 물론 기계적 성능이야 당시의 디지털로는 따라갈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만큼 좋은 필름 카메라들이 있었지만(또 지금도 약간은 그렇지만), 제게는 촬영 순간만큼이나 촬영 이후, 촬영 외의 일들이 중요했습니다. 당연히 그런 면에서 디지털은 필름과는 아예 차원이 다를 정도의 편리함을 선사했습니다. 지금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애초부터 디지털로 사진을 시작한 경우에는 생각없이 마구 찍는다기보다는 필름을 아끼느라 주저하는 부자연스러움을 몸에 익히지 않았다는 쪽으로 생각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필름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LCD를 보고 찍을 수 있는 보급형 디카를 가진 사람들보다 접사에 상대적으로 인색하며, 극단의 앵글을 구사하는 연습도 조금 부족합니다. 또 연사를 하는 것이 적합한 시점에도 셔터룰 누르기를 망설여 합니다. 제가 그동안 보아 온 바로는, 이런 요인들이 상대적으로 피사체를 찾는 시야를 좁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앞서 말한 테크닉들은 필름 카메라의 경우 전문적인 수업이 있고 나서야 시도할 마음이 선뜻 나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디지털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암실작업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디지털의 '거침없음' 때문에, 디지털 카메라에 잡히는 피사체들은 통계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필름 카메라에 담기는 이미지들보다 좀더 하찮아 보이기도 하고, 그저 우연에 의해 건져지는 멋진 작품들의 경우도 상대적으로 많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디지털이 등장하면서 훌륭한 사진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즉, 어쨌든간에 디지털이 표준적인 의미에서의 좋은 사진을 양산할 수도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죠. 이것은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기계적 기능이 뛰어난 작가들 중 창의력이 좀 떨어지는 사람'의 경우 '디지털을 사용하는 어설픈 작가들 중 예술적 감성이 좀 뛰어난 사람'보다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날로그 편향적인 작가 또는 집단이 디지털 사진에 대해 평가하거나, 우려하거나, 심지어 폄하하는 것을 볼 때마다 패러다임의 차이를 느낍니다. 기능으로서 먼저 사진에 접근하는 패러다임과, 감성으로서 먼저 사진에 접근하는 패러다임. 물론 이상적인 사진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할 필요조차도 없겠죠. 어쨌든 사진에 접근하는 방법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은 필름 카메라 세대(또는 필름 카메라의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연구대상일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그동안 사진의 중심이 카메라였다면, 디지털 시대 이후부터는 그 중심이 이미지 자체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이런 관점의 이동은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작가에게나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카메라 가격은 점점 떨어지고, 작품 사진의 수준은 전반적으로(특히 기능적인 면에서) 상승하며, 예술적 감성과 상상력이 지배하는 사진세상 - 디지털에게는 일상이겠지만 아날로그에게는 충격적인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디지털이 주류가 되는 때가 오면 지금의 충격은 그저 잠시의 이야기거리에 불과하게 되겠죠. ...하여간, 전부 아마추어 영역에서의 이야기들입니다. :)


갑자기 횡설수설하고 싶어진
CozyrooM.
200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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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R클럽 캠페인 짧은 답글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서로에 대한 배려는 네티켓의 기본입니다.




young54
충분히 좋은 글, 공감할 부분이 많은 글입니다. 그러나 "기계적 기능이 뛰어난 작가들 중 창의력이 좀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글은 경우에 따라 필름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 하시기 바랍니다. CozyrooM님은 어떠하신지 모르지만 "인간은 일단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몇몇의 문구를 문제 삼을 수도 있으며, 그것은 이 글을 쓰는 CozyrooM님 조차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미에 "전부 아마추어 영역에서의 이야기"라고 슬쩍 피해(?) 가셨는데, 과연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페셔널이 상업적 사진 외에 Pine Art영역을 얼마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가요? 특히 사진의 부분에서는 프로와 아마의 영역이 모호하기 때문에 "초보와 달인"의 차이로 나누는 것 외에는 무의미 하다고 봅니다. 앞으로는"아마추어 영역"이라는 용의주도한 장막으로 보호받으려 하지 말기를 우리 에셀알회원 모든분께 당부 드립니다. 2002-07-04
08:20:57



현카피
잘 정리된 좋은 글입니다.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결국은 디지탈 월드의 패러다임 속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이야기이니까요. 그러나 접근기회의 부여 범위가 늘어난다는 긍정적인 현상이 '주관성' 혹은 '상대성'이라는 보호 하에 저급한 이미지의 양산이라는 별로 긍정적이지 않은 현상을 수반하게 되는 것 또한 필연적인 것 같습니다. 누구도 욕먹기 싫어 함부로 말하기 주저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지요. 2002-07-04
08:25:07



Velvia
세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어쩜 제 생각과 이리 똑같을 수가^-^ 2002-07-04
09:20:01



NePo
필름이던 디지탈이던 얼마나 생각을 하고 공을 들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2-07-04
10:00:20



FlySolo
이 글은 정말 명문이네요. 패러다임의 차이라는 말씀, 정말 110% 공감합니다. 2002-07-04
10:20:37



Memory
사진은 이미지 자체에 중심이 있다는 부분이 특히 와닿습니다.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름이냐 디지털이냐보다는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어떠한 형상을 하고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듀안 마이클스의 사진들은 분명히 이미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듯합니다.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시간 나실때 한번쯤 보아둘만한 이미지들이라고 생각됩니다.. 2002-07-04
10:24:47



크로노스
저변이 확대된다는 의미에서는 디지털이 많은 역할을 하는것 같습니다. 저같은 "초보"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이라는 것을 찍으니까요. ^^ 그것이 다른사람이 보기에 정말 "사진"인지 아니면 그 무엇인지.. 저급한 이미지가 양산이 되겠지만 그와함께 "저급하지 않은" 이미지가 생산될 기회를 이전보다는 더 늘이게 되는 것은 아닐지요? 2002-07-04
10:33:20



CozyrooM
young54님(오프라인에서는 선생님으로 불러야 하는 것으로 압니다)의 답글을 받게 되는 것은 개인적으로 작은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문구 중 첫번째는 횡설수설중에도 상당히 신중하게 쓴 부분이었습니다. 그 부분과 그에 이어지는 문단은 기계적 기능과 예술적 감성이 아예 나눠질수도 없는 것이지만 또한 당연히, 동일시될 수도 없다는 뜻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예전에는 예술적 감성이 뛰어난 사람도 기능적인 한계에 막혀 뜻을 펼 수 없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창조력만으로 승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뜻으로 쓴 것입니다. 실제로 "창의력이 좀 떨어지는 사람"이 아닌 작가의 경우에는 디지털 시대건 무엇이건을 떠나 언제든 탁월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실질적인 작품들로써 증명되어 있구요.

지적하신 두 번째 문구는 "프로페셔널의 경우에는 이미 기술적, 기능적인 부문의 마스터로서 오로지 작품에 집중할 뿐인 것이고 아날로그 디지털의 경계 같은 것을 문제삼을 일고의 필요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것 자체가 아마추어적이다."라는 뜻으로 붙여 놓은 말입니다. 이것을 young54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받아들이셨다면, 그것은 young54님과 저의 "프로페셔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원인이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직업"이라는 의미에서 약간 벗어나, 말씀을 인용하자면 "달인"의 개념으로서(좀더 정확하게는 이미 기능적 수업을 마친, 작품에만 집중하는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마추어" 운운한 것은 어떤 보호막 속으로의 도피를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왜...? :) )

'직업적 개념으로서의 협의의' 프로페셔널이 Fine Art 영역을 얼마나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답변은 제 주제로는 감히 '얼마 정도'라고 말씀드리기 어렵겠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거의 대부분일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시 이 문제에 어떤 정해진 답변이 있는 것이라면 또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이는 어떤 카메라에 "professional"이라는 로고를 달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나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young54님의 말씀을 읽고, 다음부터는 글을 쓸 때 '초보'와 '숙련자' 정도로 어휘 전환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질적으로 개선할 부분이 많은 사진에 대해서는 초보이건 숙련자이건을 떠나 정중하고 솔직한 조언을, 뛰어난 사진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나 없거나를 떠나 찬사를 아끼지 않는 SLRClub의 분위기를 원합니다. 겸손을 가장한 보호의 장막을 기분좋게 들춰 주는 재치가 있다면 더욱 즐거울 것 같습니다. young54님의 말씀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2002-07-04
10:37:27



CozyrooM
이미지의 저급화에 대한 우려의 말씀들에 대해서는, 위의 제 글에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만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 사진이 아직 저급한 수준이니 그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분들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 매일 느끼는 점입니다...)

하지만 '천재들의 아이디어 도출법'에 대한 관찰을 좀 해 보신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 하고 조심조심 말씀드려 봅니다. 천재들은 상당수가 다작(多作)을 하며, 이 중에는 평범할 뿐더러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것들도 꽤 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애초부터 뭔가를 잔뜩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창조적 노력을 계속하는 에너지를 지녔다는 점에서 타인들과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의 부산물로서 쓸데없는 아이디어, 변변찮은 작품, 진부한 논문들이 쏟아지지만, 그러한 시행착오들을 타인들보다 훨씬 신속하게 극복하고 효율적으로 지식을 관리함으로써 걸작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제가 관찰한 바에 있어서도 그것이 맞는 말 같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이러한 시행착오가 예전보다 훨씬 '편리하게, 대중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순기능으로도 역기능으로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같으면 이런 일들이 어지간한 노력(헛수고일지라도) 없이는 잘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희 공해가 될 지경으로 범람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디지털적 평등'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겠습니다. 막말로 '개나 소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보다 신중할 것'을 요구해야 할까요, 아니면 예전보다 훨씬 '평등하게'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들의 처리/관리 방법을 생각해야 할까요. 어느 쪽이 궁극적으로 효과적일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일차적으로는 개인들에게 '최소한 공적 영역에서는 신중할 것'을 요청해야겠습니다만, 그만큼 각 개인들에게 '공적 영역에 드러내기 이전에 혼자 뭔가를 처리할 수 있는 교양'을 퍼뜨리기 위한 선구자들의 노력도 기울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력의 일환이 SLRClub에서의 고수님들의 조언이 아닐까 합니다. 저를 포함한 초보 창작가들이 지독히도 갈구하고 있지만 또한 지독히도 활성화되고 있지 않은. 2002-07-04
10:56:43



현카피
저도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CorzrooM님의 글쓰기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주제를 드러내는 숙련된 기술과 오독의 여지를 최소화한 문장 등에서 말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이미지의 저급화'에 대해서, 저 자신이 그 문제를 지적하기는 하였으나 오히려 그것을 동반하는 순기능에 더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문제가 되는 '저급'이란 실은 이미지 자체에 대한 것보다 이미지의 생산 과정에 개입하는 인식의 저급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디지탈 카메라로 사진을 처음 접한 분들이 가지는 '필름' 카메라에 대한 인식같은 것 말이지요. 짧은 글에서 정확히 묘사하기는 힘들지만, 이미지의 컨트롤에 대한 과신이라든지, 스스로의 결과물에 대한 지나친 옹호 등도 그 안에 포함되겠지요.

'필름'카메라로도 이러이런 것이 가능하냐,고 묻는 디지탈 카메라 사용자들을 보며 저는 아날로그 옹호자들의 그것 못지 않은 편견과 오해를 느끼곤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아날로그적 배타성이 테크놀러지에 대한 막연한 반감에 기반하는 반면, 디지탈 유저의 그것은 '근원에 대한 무지'에 근거한다는 점입니다. 어느쪽이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지요. 애초, '필름 카메라'라는 말처럼 우스운 말도 없습니다. 그런식의 이름붙이기 라면 우리는 LP를 '구형 CD'혹은 '까만 CD' 정도로 불러야 하겠지요. 어차피 새롭게 나타난 도구에 대해 이름 붙히는 일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단순히 '필름 카메라'라는 단어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 <<필름>> 카메라라고 '필름'에 액센트를 붙이는 새로운 그룹의 사용자들의 인식에 과연 문제가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액센트의 묘한 뉘앙스 속에서, 그들 자신의 주장처럼 과연 도구가 달라진 것 뿐일까 하는 의문이 따오르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저 자신도 '그들'에 포함되지요^^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질수록 생산되는 이미지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그 증가가 설령 전체 퀄리티의 평균값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수반한다고 하여도 '기회의 평등'이라는 엄청난 선물의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라고 담담히 말할 뿐입니다. 어차피 누구도 스스로를 평가할 수 없으니 그 담담한 평가의 칼날이 스스로를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하는 말이지만 말이지요. 2002-07-04
11:36:25



CozyrooM
현카피님의 통렬한 지적 감사히 읽었습니다. 지금 제 안에 남아 있을 지 모르는 편견에 대해, 그리고 덕없이 부족한 사진 공부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2002-07-04
11:49:23



현카피
CorzrooM님의 글을 읽고 갑자기 더 잘 알고 싶다,라는 글쟁이다운 욕망이 들어 갤러리며 게시판들을 돌아다녔습니다. 참 멋진 분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로나마 이런 분을 뵙게 되서 참 다행이고 기쁩니다. 반갑습니다^^ 2002-07-04
11:58:32



CozyrooM
헉... 저야 현카피님께 감히 반갑다는 말씀을 드리지도 못 할 수준입니다. 귀엽게 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려주시는 글 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얼굴이 달아오르네요...) 2002-07-04
12:08:17



일심
CozyrooM의 좋은 글과 특히 답글에서 자신의 생각과 보는 시각에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을 감정을 자제하고 적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는 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우리 slr클럽의 답글쓰기에 좋은 예를 제시한 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by CozyrooM | 2005/08/21 20:23 | 5 지난 이야기들 | 트랙백 | 덧글(1)
[명성황후] 올바른 관계를 위해 드러내어야 할, 숨겨진 이야기 하나. (2)
아래 글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명성황후] 올바른 관계를 위해 드러내어야 할, 숨겨진 이야기 하나. (1)

4. 보고서엔 어떤 내용 들어 있나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원인과 발단에서부터 실행자와 사후 대책까지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는 '에조 보고서'의 분량은 각 2쪽씩을 차지하고 있는 목차와 서문을 포함해 모두 12쪽이다. 아울러 보고서는 (1)발단 (2)명의 (3)모의자 (4)실행자 (5)외국사신 (6)영향 등의 소제목이 붙어 있는 6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기자는 이 보고서를 김진명씨로부터 입수한 뒤 일본어에 정통한 전문가에게 번역을 맡겼다. 그러나 주로 고어(古語)와 사어(死語)로 쓰여 있어 도저히 완벽한 번역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만 보고서에 한자로 표기된 '부덕의(不德義)' '경솔천만(輕率千萬)' '직무상 책임(職務上 責任)' '주모자(主謀者)는
미우라 공사(三浦 公使)' 등의 표현이, "미우라 공사의 책임과 처벌을 암시하는 내용이 들어 있고, 사후에 은폐되고 조작됐다는 의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유일한 문서"라는 김진명씨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기자는 이번 취재 과정에서 겐타로보다 좀더 자세하게 '에조 보고서' 내용을 인용한 서적을 발견하는 의외의 성과를 얻었다. 친일문제전문가인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일본 서적들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뒤지던 중 찾아낸 <외교문서로 말하는 일한병합>(합동출판, 1996)이 바로 그것이다.

재일 사학자 김응룡씨가 쓴 이 책은 '에조 보고서' 전문 중 10분의 1 정도만 인용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나온 어떤 저술보다도 풍부하게 보고서 내용을 소개하고 있었다. 다음은 이 책에 서술된, '에조 보고서'의 주요 내용에 대한 설명이다.

"에조는 법제국장 앞으로 보낸 보고서 안에서, 왕비 살해를 일본의 모든 이들이 생각하고 있었다고 보고서 머리에 적고 있다. 왕비 살해의 필요성은 미우라도 일찍부터 생각해 오고 있었다고 말하고, 일본의 수비대가 주력이었던 일, 왕비 살해와 사체에 대한 능욕의 상황을 자세하게 적고 있다.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을 외국인들에게 보인 데다, 이 외국인들과 언쟁까지 벌인 일과 대궐에서 난동을 끝내고, 보기 흉한 몰골로 대궐에서 철수하는 것을 대궐 앞 광장에 몰려든 조선인 군중들과 서둘러 성안으로 들어가는 러시아 공사에게도 보이고 말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사체에 대한 능욕"이란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 역시 명성황후의 최후와 관련해서는 야마베 겐타로의 해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보고서에 담긴 진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편 김진명씨는 '에조 보고서'와 관련해 기자에게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의 발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한국인들은 명성황후가 난자 당해 죽은 걸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다만 '에조 보고서'의 존재를 접한 극소수의 일본인과 한국인 학자들만이 명성황후가 살해당한 뒤 시간된 걸로 주장하고 있다. 나조차도 그런 기존의 해석에 따라 <황태자비 납치사건>에서 시간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는 '에조 보고서'를 자세히 읽어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다시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명성황후 최후의 장면을 기록한 유일한 문서인 '에조 보고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명성황후가 시해 직전 즉 살아 있는 동안 능욕당하고 불태워지면서 죽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명성황후는 시간(屍姦)을 당한 것이 아니라 강간(强姦)을 당한 것이다."


▲ 에조 보고서 "특히 무리들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왕비(王妃)를 끌어내어 두세 군데 칼로 상처를 입혔다(處刃傷). 나아가 왕비를 발가벗긴(裸體) 후 국부검사(局部檢査)(웃을(笑) 일이다. 또한 노할(怒) 일이다)를 하였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기름(油)을 부어 소실(燒失)시키는 등…"

그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에조 보고서'에서 능욕 장면을 묘사한 대목을 직접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고서에서 실제로 그 부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주요 한자 표기 그대로 살렸음-기자주).

"특히 무리들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왕비(王妃)를 끌어내어 두세 군데 칼로 상처를 입혔다(處刃傷). 나아가 왕비를 발가벗긴(裸體) 후 국부검사(局部檢査)(웃을(笑) 일이다. 또한 노할(怒) 일이다)를 하였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기름(油)을 부어 소실(燒失)시키는 등 차마 이를 글(筆)로 옮기기조차 어렵도다. 그 외에 궁내부 대신을 참혹한 방법으로 살해(殺害)했다."

그는 이 부분을 소리 내서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은 뒤 이렇게 주장했다.

"보고서 어디에도 살해한 뒤 능욕을 했다는 논리의 근거가 없다. 이 주장은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야마베 겐타로의 해석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따른 것에 불과하다. 겐타로는 1966년 보고서 전문을 소개하지 않은 채 이 부분만 따로 떼어내 소개한 뒤 '사체를 능욕했다'고 해석해 버렸고, 이것이 한국에서까지 그대로 정설로 통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에조 보고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사람을 죽였을 때는 반드시 '살해'라는 구체적인 표현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뒤에 나오는 '궁내부 대신 살해'라는 대목이 결정적인 방증이다."

실제로 시해 장면을 묘사한 '에조 보고서'를 뒷받침하는 증언과 자료들은 많다. "일본인 흉한들은 왕비를 내동댕이치고 구둣발로 가슴을 세 번이나 내리 짓밟고 칼로 찔렀다"(왕세자 이척의 증언) "왕비는 뜰 아래로 뛰어나갔지만 붙잡혀 넘어뜨려졌고 살해범은 수 차례 왕비의 가슴을 짓밟은 뒤에 칼로 거듭 왕비를 찔렀다"(영국 영사관 힐리어가 북경의 오코너에게 보낸 보고서) 등이 대표적이다.


▲'뮤지컬 명성황후'중에서

다만 그들은 명성황후가 그렇게 칼에 찔려 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김진명씨는 이렇게 반론을 펼쳤다.

"그들은 최후의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아니다. 나중에 궁녀 등에게 전해들은 얘기를 다시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
더욱이 '에조 보고서' 이외의 어떤 기록에도 '능욕' 부분은 나오지 않는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피해자인 명성황후와 가해자인 일본인들이다. 그러나 명성황후는 죽었고, 일본인들은 진실을 철저하게 은폐하고 조작했다. 가해자 중의 한 명이면서도 미우라 일파와 입장을 달리 했던 에조의 증언이 가장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창밖을 응시하며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그가 마침내 다시 말문을 열었다.

"결국 일본인들은 명성황후를 시간한 것이 아니라 강간한 것이다. 진보적 역사학자로 알려져 있는 야마베 겐타로조차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이 끔찍한 만행에 놀라 보고서 전문은 소개하지 않고 '사체 능욕'이라고 축소해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한 주권 국가의 왕비에게 만행을 저지른 것과 그것을 은폐하고 조작한 것에 대해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한국인들 역시 처참하게 능욕 당하면서 죽어간 명성황후의 원혼을 풀어줘야 할 책임이 있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는 오늘, 우리는 "나의 억울한 죽음을 잊지 말라"는 명성황후의 단말마적 외침을 가슴으로 생생히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진명 인터뷰 "역사왜곡에 종지부 찍을 문서"

'에조 보고서' 전문이 발견됨으로써 <황태자비 납치사건>에 등장하는 '435호 비밀문서'는 실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소설의 작가이자 보고서 전문을 찾아낸 김진명씨를 만나 보았다.

-'에조 보고서'를 찾아 헤맨 까닭은 무엇인가.
"한국민과 대다수 선량한 일본인의 기대와는 달리, 역사 교과서 왜곡이나 망언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양국의 역사인식 차이는 좁혀질 줄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그 이유가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자국의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본인이 직접 쓴 이 보고서를 찾아내 그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한일 양국의 역사인식이 평행선을 달린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다는 것인가.
"예컨대 한국인들은 군위안부나 징용을 얘기하면 일본인들이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군위안부를 말하면, 그들은 전표를 내놓는다. 즉 군부대를 따라다니며 돈을 벌던 여자들이라는 식의 논리다. 징용을 얘기하면, 그들은 다시 봉급명세서를 내놓는다. 징용자는 돈을 벌러 일본으로 온 노동자라는 것이다. 조선 병합과 수탈에 대해서는 서구 열강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려고 했다는 식의 논리를 내놓고, 실제로 이런 것들을 자국의 국민들에게 가르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나는 일본인들이 모두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역사를 제대로만 알면 반성하고 사과할 줄 안다. 지난번 후쇼샤의 교과서 채택 거부운동에서 보았듯이 역사왜곡에 종지부를 찍을 사람들도 결국은 일본의 선량한 시민들이다. 나는 일본의 정부, 언론, 학계가 도저히 변명할 수 없는, 그리고 어떤 논리로도 호도할 수 없는 결정적인 역사적 사건, 일본인들이 정말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사료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당시 현장에 있던 일본인이 작성해 본국으로 보낸 이 '에조 보고서'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는 최고의 사료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선 아직도 일제의 침략과 만행이나 친일 잔재 청산을 말하면 '과거지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반공과 반북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남북한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증오하고 갈등하게 만든 분단과 전쟁의 뿌리는 일제의 침략과 압제였다.그리고 그 '불행의 씨앗'은 107년 전 어느 날 새벽에 발생한 이 나라 '국모'의 억울하고 참혹한 죽음이었다. 그러므로 명성황후의 비극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2002/06/03 오후 3:32
ⓒ 2002 OhmyNews

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전문기자입니다.
by CozyrooM | 2005/08/17 10:28 | 5 지난 이야기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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